세상만사

작은 공간의 경영 철학

말까시 2007. 1. 27. 03:48
 

작은 공간의 경영 철학


구두가 자꾸 말썽이다. 일반 구두는 너무나 딱딱하고 걸을 때마다 똑똑 소리 나는 것이 싫어서 바닥이 부드러운 구두를 장만했다. 편하기도 하고 외관이 보기도 좋았다. 보통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거금은 아니지만 소득에 비하면 큰돈이다. 그렇게 애지중지 하던 새 구두는 한달도 채 되지도 않아 지방의 한 장례식장에서 잃어버렸다. 어떤 더러운 인간이 새 구두인 것을 알고 훔쳐간 것이다. 새벽이 되어서야 임자 없는 낡아빠진 구두하나가 남아있었다. 바로 그 놈이 훔쳐간 것이 분명했다. 엄숙한 장례식장 분위기에 압도되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은 욕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더럽게 재수 없는 날, 상경하는 시간 내내 불쾌했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똑 같은 모델로 구입했다. 구두매장에 들어서자마자 고를 것도 없이 바로 집어 들었더니 종업원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 “지금껏 구두장사를 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라고 하면서“무슨 사연이 있습니까.” 라고 물었다. 장례식장에서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더니  “세상에 남의 신발을 훔쳐가는 못된 놈이 다 있어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혀를 찼다. 그 신발 아직까지 잘 신고 있다. 그런데 구두가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왼쪽구두 바닥이 갈라진 것이다. 순간접착제로 붙이기를 여러 번 반복했지만 비가 오면 물이 스며들곤 했다. 구두병원에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큰 도로가에는 의례 구두 수선하는 곳이 있다. 한 평 남짓도 안 되는 작은 공간이지만 내부의 구조는 아주 다양했다. 좁은 공간에는 전기도 들어 왔다. 살펴보니 텔레비전도 있다. 그뿐이 아니다. 전기난로에 냉방기 그리고 드라이도 있었다. 여기 저기 수납공간에는 수선재료로 가득 했다. 수선요금표도 인쇄하여 벽에 부쳐놓았다. 작은 공간에 그렇게 많은 종류의 물건들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동안 헤지고 떨어지면 그냥 버렸지 수선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광택작업은 집에서 하였으며 간혹 사우나에서 했기 때문에 작은 공간의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수선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냄새가 지독했다. 할아버지는 광택제에서 나는 냄새는 아랑곳 하지 않고 밀폐된 공간에서 일에만 열중했다. 환기를 해야 할 텐데 사방을 둘러봐도 환기구는 없었다. 점점 머리가 아파온다. 문지르는 힘이 가해질 때마다 품어져 나오는 냄새는 더욱더 지독했다. 내리치는 망치소리에 퍼져나가는 먼지는 바로 코로 들어갔다. 밑창을 덧대기 위하여 본드를 바르기 시작했다. 점점 품어져 올라오는 본드 냄새는 작은 공간을 꽉 채우고 작은 불씨만 있어도 금방 폭발 할 것만 같았다. 화공약품에서 나오는 휘발성물질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할아버지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평생 구두수선 일에만 몰두했지 휘발성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보고 들을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지 않았을까. 독성에 대하여 설명해주고 싶었다. 참았다. 열심히 일하는 할아버지에게 걱정거리라도 생기면 일하는데 방해가 될 것 같아서였다.


밑창이 갈라진 구두를 십여 분간 갈고 붙이고 뚝딱하더니 아주 새 구두가 되었다. 새롭게 광택도 내주었다. 수선비도 아주 저렴했다. 투박 할줄 알았던 할아버지의 말투는 친절 그 자체였다. 달력을 보니 매주금요일마다 교육이라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어느 곳에서 무슨 교육인지 모르겠지만 배움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구두 수선을 마치고 수선비를 주니 할아버지는 “고맙습니다.” 하면서 꾸뻑 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 미안했지만 왠지 기분이 좋았다. 구두수선을 천직으로 알고계시는 할아버지는 작은 공간의 경영 철학을 오랜 경험을 통하여 터득한 것이 분명했다. 손님을 왕으로 여기면서 성실하게 사시는 할아버지 같은 사람들이 이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숨은 일꾼이 아닌가 한다.


가게를 나와 밖의 신선한 공기를 들이 마시니 살 것 같았다. 친절하고 야무지게 수선해준 할아버지의 여운은 마음속에 한참을 머물렀다. 저만치 보이는 수선가게를 뒤돌아보니 할아버지의 건강이 걱정되었다. 휘발성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설명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다음에 갈 기회가 있으면 방진마스크를 사용할 것과 환기시설을 설치할 것을 꼭 당부 드리고 싶다. “할아버지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