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땅
대한민국 좁은 땅덩어리에서 4천만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새마을 사업과 동시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던 인구가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에 힘입어 늘어나는 폭이 감소하여. 지금은 정부의 출산장려책에도 불구하고 2020년을 정점으로 인구가 줄어든다고 한다. 그러나 수도권의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역대정권에서 수도권 과밀억제 정책을 숫하게 추진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책에도 불구하고 너도 나도 “서울서울” 외치다 보니 서울의 위성도시는 서울을 주변으로 거대한 공룡의 도시로 변해 버렸다. 80년대만 해도 서울의 외곽에는 제법 녹지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수도권 전철을 타고 외곽을 지날 때마다 시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공간들도 많지는 않았지만 제법 아름답구나 하는 자그마한 마을도 있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개발의 논리에 밀려서 그린벨트가 하나씩 풀리더니만 이제는 거대한 빌딩들이 하늘 높이 솟아 있다. 빌딩이 아니라 아파트 숲이 촘촘히 박혀 있다. 저렇게 많은 아파트에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가끔 의아 할 때도 있다. 그렇게 많이 주택을 공급했음에도 집이 모자란다고 한다. 서울의 주택 보급률이 100%를 넘은지 오래라고 하는데 왜 주택이 모자란다고 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어긋나는 주택정책을 펼쳐서 집값이 뛴 것이라고 한다. 경제를 깊이 공부하지 않아 모르겠지만 주택을 경제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는 수궁이 가지 않는다.
<시골의 땅값은 이렇게 변했다.>
시골의 땅에 대하여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현재까지의 변천사를 살펴보기로 하자. 그 곳은 대도시 주변도 아니고 신도시가 들어오는 개발의 호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전형적인 시골마을일뿐이다. 70년대 이전 즉 기계화가 되지 않은 그 시절의 땅값은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농지가 최고 비쌌다. 그 시절만 해도 농경사회가 주를 이루다 보니 씨를 뿌려 가을 수학할 때까지 숫하게 농지를 왕래해야만 한다. 거리가 멀다보면 그 만큼 농사일에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 이 후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의거 도시에는 공장이 들어서면서 산업화의 바람이 불었고, 시골에서는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었다. “잘살아보세”를 외치며 매년 다시 갈아줘야하는 초가지붕이 반영구적인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었다. 동시에 경지정리사업이 시작됨과 함께 경운기의 보급이 이루어지면서 본격적으로 기계화 영농이 시작되었다. 여기서 땅값이 역전되었다. 잘 정리된 농지가 농사일에 편 할뿐만 아니라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수확량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밥만 먹고 못산다. 시골사람도 사람답게 살아보자” 라는 말에 하나둘씩 농촌을 버리고 서울로 떠났다. 결국 시골에서는 더 이상 젊은 사람구경하기가 어려워졌다. 이러다 보니 시골에서는 부모님세대만이 고향을 지키고 마지막 농토를 지키면서 묵묵히 살고 있었다. 변화가 없으리라 생각했던 시골에서도 여기 저기 도로가 뚫리고 아스팔트 포장이 되면서 괴상한 건물들이 띄엄띄엄 생겨났다. 괴상한 건물 중에 출입구를 주렁주렁 천막으로 가린 러브호텔도 하나 둘씩 늘어났다. 그렇게 들어선 건물의 땅들은 대부분이 경지정리가 되지 않은 도로 옆의 상대농지이다. 농지법상 절대농지는 농사밖에 질수 없지만 상대농지는 주변여건에 따라 농지전용이 가능하다. 따라서 건물을 지을 수 있는 상대농지가 투기꾼들의 먹이감이 되어 버렸다. 바로 이 순간 땅값이 다시 역전되었다. 노무현 정부 초기 행정수도를 이전한다는 대단한 호재로 광풍이 불더니만 땅값이 두 배 이상 상승하자 토지거래 허가 구역으로 지정해버렸다. 시골에서 못살겠다고 고향을 떠난 사람들 중, 땅을 판 사람과 빈손으로 떠난 사람과의 명암이 엇갈리었다. “세상은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가 된다.”는 우리의 속담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서울의 땅은?>
서울은 한양천도 이후 외곽 성곽을 축조하여 사대문을 관문으로 하여 발전을 거듭하여 강남개발, 목동신시가지 그리고 상계신시가지를 개발함으로써 서울의 택지개발이 종료되었다. 하지만 모자라는 주택수요를 충당하기 위하여 수도권에 분당, 일산, 중동, 평촌, 산본을 개발함으로써 주택난이 해결되는 듯 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때 잠시 하락 후 분양가 상한제를 해제 후 중대형 아파트 이주로 상승기류를 타다가 2006년에는 소형 할 것 없이 급상승하였다. 정부에서 여러 가지 부동산 정책을 발표했지만 할 때마다 오히려 상승하는 기폭제 역할 만 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말들이 많다. 거품이 꺼진다는 말도 있고 부동산불패의 신화가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도 상당하다. 그러나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그냥 욕심 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순리대로 선택하고 그것이 잘되든 못되든 간에 팔자소관이라고 생각한다면 삶이 편하지 않을까 한다.
언젠가 땅으로 망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개발전의 강남은 과수원과 황무지나 다름없는 자갈밭이었다고 한다. 그곳의 사람들 중 집안형편이 좋아서 배웠다는 사람은 강남의 땅을 팔아서 사대문안에 늴리리 기와집을 장만하여 도심의 문화생활을 하면서 살았다. 세상이 변하고 있는데 서울양반이라고 안주하다 보니 현재 기와집 하나 달랑 갖고 있는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당시 조그마한 땅덩어리이지만 농사일에만 전념하고 그 곳을 지킨 사람은 강남개발과 함께 하루아침에 갑부가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졸부가 된 농부는 평생 잡고 살았던 삽자루를 버리고 골프채를 잡았다. 그러나 헛스윙만 일삼다가 골프채를 엿 바꿔 먹었고, 그 이후 주체할 수 없는 돈뭉치에 나도 한번 돌려볼까 카바레에 갔다가 스텝이 엉켜버려 핀잔만 들었다고 한다. 맹연습을 한끝에 다시 한번 가보았지만 평생 일만 하여 굵어진 손마디가 상대방의 다이아 반지에 걸려 말썽을 부리는 바람에 개망신을 당하고 포기 했다고 한다. 결국 하는 일 없이 돌아다니다가 주식에 오락에 있는 돈 다 날리고 알거지가 되어,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인생역전에 역전을 거듭 했지만 두 분 중 어느 사람이 현명한 삶을 산 것인지는 두 평 남짓 땅속으로 들어가 봐야 아는 일이다.
<노원의 땅!땅!땅!>
강남 개발과 동시에 삼성동에서 역삼동에 이르는 테헤란로에 업무용빌딩이 엄청나게 들어섰다.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권 시절에 벤처 열풍이 부는 바람에 업무용빌딩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그 이후 도곡동에 있는 전경들의 훈련장이었던 곳에 타워펠리스라는 주상복합빌딩이 들어서면서 강남의 집값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잘 갖추어진 인프라에 수명을 다한 노후아파트 재건축이라는 광풍이 서울전역으로 퍼지면서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강남 좋다구는 하지만 막상 가보면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니 잘못 진입하면 오도 가도 못하는 교통지옥이나 다름없다. 그러면 노원은 어떠한가. 상업시설이 조금모자라서 흠이지만 앞으로 개발에 개발을 거듭하다보면 자연적으로 늘어날 것이고 잘 구획된 도로는 어디하나 막히는 곳이 없다. 잠실의 저층 주공이 재건축되어 얼마 안 있으면 입주를 한다고 한다. 잠실에 신도시가 새롭게 재탄생하는 것이다. 노원 역시 좀더 시간이 흐르면 면허시험장과 창동차량기지가 개발되어 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공릉동 나노단지가 완성되면 강남 못지않은 인프라가 구축되는 것이다. 또한 신시가지 초기에 지어진 아파트를 중심으로 재건축이 시작되고 리모델링이 착착 진행된다면 푸른 산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전원도시가 새롭게 재탄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