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대목장

말까시 2018. 2. 13. 11:01

◇ 설 명절 대목장에 나가보면 볼 것 많고 살 것이 차고 넘친다.

 

명절을 앞두고 서는 장이 대목장이다. 장에 나가보면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건물 밖에까지 싸 놓은 물건들로 통행이 불편해도 대수롭지 않다. 보고 사는 즐거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오가는 사람 어깨가 부딪쳐도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치기 일쑤다. 경기가 좋지 않다고 해도 대목장만큼은 풍성함이 넘쳐난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일지라도 제수용품을 사야 하고, 아이들 때때옷을 입혀야 하는 것이 부모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재래시장에서 장을 봤다. 처가 본가를 방문해야 하는 관계로 준비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예전처럼 사람들이 바글바글 하지는 않았지만 물건만큼은 차고 넘쳤다.

 

사과, 귤, 곶감 등 과일을 박스째로 구매했다. 한우는 너무 비싸 수입산 덩어리 쇠고기를 얇게 썰어 포장했다. 불고깃감으로 양념만 잘 하면 한우나 수입산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이것저것 담다 보니 구루마가 묵직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족발이 보인다. 그냥 지나치려 했지만 잽싸게 낚아채는 아내의 빠른 손동작에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고춧가루가 붉게 물든 홍어 무침도 함께 담았다.

돈 나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만, 그만을 외쳤지만 빠르게 눈알을 굴리며 장을 보는 아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내의 뒤를 따라다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전을 부치기 위해 두부와 명태포를 마지막으로 주워 담았다. 물건과 물건들이 탑을 쌓아 구루마 밖으로 흘러내리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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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하기 무섭게 물건을 정리하여 고기와 생선은 김치냉장고에 넣었다. 과일은 시원한 다용도실에 쌓아 놓았다. 더 이상 춥지만 않는다면 얼지는 않을 것이다. 물건을 정리하고 나서 영수증을 보니 동그라미가 셀 수 없이 많았다. 설 보너스를 받긴 했지만 지출이 상당하다. 처가 본가를 거쳐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비용이 만만치 않다. 내심 걱정이 앞섰지만 개의치 않고 앞으로 지출 목록을 작성하는 아내는 싱글벙글이다. 돈은 들지만 고향을 간다는 그 자체가 즐거운 것 같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는 소고기를 꺼냈다. 시골 가서 음식을 장만하려면 심란하고 익숙하지 않아 미리 만들어 놓자는 것이다. 이가 망가져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시어머니를 위해 불고기를 곱게 갈아 냉동시켜 놓은 아내가 여간 예쁜 것이 아니다.

 

우유보다 장기간 보관하고 먹을 수 있는 두유와 선물 보따리를 처가, 본가, 등 인사드릴 일가친척별로 표시를 해두었다. 아내는 준비성이 철저하다. 섬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우리 집 남자들은 "어질 줄만 알지 치울지 모른다."고 늘 불만이다. 힘들어하는 기색 없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광에쟁여 놓고는 “아이고, 이제 다 됐네” 하면서 큰 한숨을 내쉬고는 기지개를 폈다.

아침을 먹고 있는 나는 아내의 눈초리가 예상치 않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식탁 맞은편에 앉아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아내의 입술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시골댕겨올라면 돈 깨나 부서질 건데 돈 좀 내놔야 하는 것 아냐” 여차하면 달려들 기세다. “밥 먹다가 체하게 생겼네. 교통비 하고 장인 장모 용돈 준비하면 되잖아” 화는 내지 않았지만 돈, 돈, 돈하는 아내가 미웠다. “뭔 소리를 그렇게 섭하게 하십니까? 설 보너스 가 대략 얼마 인지 다 알고 있는데, 그 많은 것 다 어디다 쓰려고 그러시나요. 오늘 당장 1백 원만 찾아와, 알았지” 눈에 불꽃을 피우며 공갈 협박하는 아내의 기세에 눌려 굴복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