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혼술 맛 괜찮아.

말까시 2018. 1. 11. 15:24

◇ 혼술의 즐거움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철갑을 두르고 잔뜩 웅크리고 다니는 처자의 얼굴에 김이 서린다. 그녀의 입김은 어묵탕에서 솟아오르는 것보다 강하고 늘어짐이 길다. 열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은 꽁무니뿐, 달리는 차도 얼었다. 앙상한 가지 사이로 달리는 칼바람 소리만으로도 매서움을 느낀다. 호호 불어 보지만 춥기는 매한가지다. 따뜻한 국물에 소주 한 잔이 절로 생각난다.

 

혼술을 즐기는 시대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얼 만전까지만 해도 삼삼오오 어울려 마셔야 만이 술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했다. 혼술은 청승맞다며 터부시했고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했으며 중독이란 단어를 이용하여 공격을 당했다. 대가족에서 핵가족, 결국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혼밥, 혼술 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주머니가 가볍다. 꽃등심은 아니라도 삼겹살은 먹어야 하지 않는가. 날씨도 춥고 해서 술 생각이 간절했다. 귀가 도중에 막걸리 한 통을 사고 싶었지만 멈추어야 하는 귀찮음에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지하 주차장임에도 무척이나 추웠다. 찬바람이 목덜미를 타고 가슴팍으로 내려가는 순간 오들오들 어깨가 들썩였다. 몸을 데우는 데는 솜바지가 제격이지만 알코올을 따라올 순 없다.

 

고층에 사는 관계로 승강기에서 머무는 시간도 꽤나 된다. 어지럽게 붙어 있었던 전단지도 몇 개 남지 않았다. 광고비를 아끼려고 바닥에 전화번호를 남긴 업체도 있었다. 전단지를 살피는 와중에도 술 생각이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나보다는 아내가 먼저 귀가한다. 저녁 밥상에 멸치 대가리만으로도 술 한 잔은 거뜬하다. 김치면 어떠랴. 마셔 즐거우면 그만이지. 담근 술로 한잔하기로 하고 승강기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센서 등이 들어왔다. 중문 사이로 매섭게 들어가는 공기 소리가 요란하다. 중문을 지나 좌회전 부엌 쪽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두어 발자국 걸어 주방을 보는 순간 아내의 모습이 들어왔다. 저녁을 준비하느라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 것 같다. “이게 무슨 냄새야” 아내는 화들짝 놀라며 닭갈비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야호다. 야호” 입안에는 벌써 홍수가 되어 술을 당기고 있었다.

 

아내는 맹물파라 반주하는 것을 못마땅해 한다. 술이 나쁘다는 것만 알지, 취함의 즐거움은 모른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 하여 상대방이 즐겨 찾는 기호식품을 나쁘다 할 순 없는 것이다. 오늘의 진리가 내일 거짓으로 판명 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세상 모든 것이 거짓과 진실이 범벅이 되어 호시탐탐 내 주머니를 노릴지 모른다. 어떤 것이든 일장일단이 있기 마련이다. 잘만 다스려 취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다 먹었네, 좀 남은 것 없나, 있으면 데워주삼” 아내는 잔열이 있어서 데울 필요가 없다며 전골냄비를 열고 한 접시 퍼 왔다. 김이 모락모락 온기가 그대로다. 하이라이트 장점이 잔열이 지속된다는 것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어허라, 취한다' 180cc 보다 좀 더 마시고 나니 동공이 커지며 사물이 선명했다. 마음씨 고운 아내는 클레오파트라가 되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혈관에 알코올이 흐르는 동안은 마냥 행복하다. 원가 1만 원도 안되는 재료로 마신 혼술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