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난쟁이가 되어 버린 엄마

말까시 2017. 3. 20. 14:56

◇ 난쟁이가 되어 버린 엄마

 

 

봄 향기 그윽한 냉이 

 톡 쏘는 매운 맛이 일품인 달래


 

주말임에도 동네 입구에는 승용차 하나 없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봄이 왔다고는 하나 아직 문을 활짝 열어놓기는 이른가 보다. “엄마!”하고는 문을 열어보았다. 부엌에 계신 엄마는 저녁을 드시고 계셨다. 반찬은 한 가지,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혼자 식사하는 모습이 왜 그리 처량해 보이는 걸까. 어제오늘이 아닌데도 말이다. 다리가 아파 서서 드시는 모습이 왜 이렇게 작아 보이는 것일까. 엄마는 난쟁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엄마는 7년 전에 중풍으로 쓰러진 이후로 농사일을 할 수가 없다. 거동이 불편하여 지팡이를 의지하지 않고는 한 발자국 내딛기도 쉽지가 않다. 이가 성하지 않아 믹서기로 갈아서 음식을 섭취한다. 몸이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신경이 예민하다. 당신께서 쓰시는 물건은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조금만 이동이 되어도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칼 하나, 국자 하나 꺼내는 것도 힘이 부치기 때문이다.

 

아내와 난 준비해 간 돼지고기를 잘게 썰어 김치찌개를 끓였다. 마당에 있는 파를 뽑아 썰어 넣었다. 담벼락 밑에 자라고 있는 달래를 캐서 무침을 했다. 엄마는 반찬 하나, 우린 국, 달래 무침 이렇게 해서 두 가지가 되었다. 초라한 밥상이지만 싱싱한 달래무침에서 나오는 봄의 향기가 식욕을 돋웠다. 입맛이 까다로운 아들 역시 밥 한 공기 뚝딱 해치웠다. 김치찌개에 넣은 것은 파 하나밖에 없었는데 극찬을 한 아들은 국물 하나 없이 비워버렸다.

 

아들, 며느리, 손자 밥 먹는 모습이 신기해 보였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몸이 성하면 이것저것 뜯어다가 맛있는 반찬으로 상차림을 했을 텐데, 늙고 병들고 나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것에 한탄 아닌 한탄을 했다. 엄마는 긴 한숨을 내쉬며 이웃집 대소사에 대하여 말을 이어갔다.

 

“이웃집에 있는 집안 어른이 작년에 폐암으로 병원을 왔다 갔다 하다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가운데 고샅에 정정하기만 했던 키다리 아저씨 역시 병원 신세가 된지 오래다.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을 제외하고 살아 있는 할배는 한 명뿐이다. 경로당에 가보아도 할머니들만이 득실거린다. 둥구나무에 나가 앉아 주변을 살펴보아도 오가는 사람 없는 시골은 살 곳이 못 되는 것 같다. 나야 이곳이 편하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너희들 고생 안 시키려면 밤새 안녕해야 할 텐데, 그때 바로 갔었어야 했는데, 질질 끌고 다니며 사는 것이 고통의 연속이다.” 말하다 말고 목이 멨는지 콜록콜록 기침을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냉이를 캐러 갔다. 아침 바람이 차가웠다. 논바닥에는 듬성듬성 냉이가 보였다. 이파리는 볼품이 없었지만 뿌리는 길었다. 냉이 향이 진동을 했다. 한 시간여 캤는데 한 바구니가 되었다. 마저 남은 달래도 한 움큼 캤다. 우물가에서 깨끗이 세척하여 비닐봉지에 담았다.

 

아점을 먹고 떠나야만 했다. 몸이 성했을 때는 트렁크 가득 먹거리를 챙겨주었다. 이제 그것을 못해주는 것에 미안한 감이 있는 엄마는 쌀 한가마니를 가져가라 한다. 거동이 불편하니 집에 있으라 해도 지팡이를 짚고 둥구나무까지 나와 배웅해주었다. “엄마! 5월에 또 올게” 하고는 손을 흔들며 출발했다. 난쟁이가 된 엄마는 달구지가 살아질 때까지 그대로 멈추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