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슬프다. 김치 하나 달랑
◇ 아! 슬프다..김치 하나 달랑.
달랑 김치 하나하고 아침을 먹었다. 정말 이럴 순 없다. 아침을 차려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해야 할까. 개도 이런 대접받지 않을 것이다. 큰소리로 뭐라 하면 집안이 시끄러울 것 같아 조용히 말했다. “반찬이 이것밖에 없나. 냉장고에 있는 거 꺼내봐” 이마에 내 천자를 그린 아내는 "그냥 드십시오. 바쁜 아침에 무엇을 더 바라나이까. 딸내미 도시락 싸느라 바쁜 거 안 보이나” 찍소리도 못하고 주는 데로 먹어야 했다.
아! 슬프다.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해서 번 돈 그대로 송금해주었는데 이런 대접밖에 못 받다니, 진수성찬을 바라는 것도 아닌데, 국 하나 끓여 주면 어디 덧나나, 한국 사람 치고 국 없이 밥 먹기란 여간 껄끄러운 것이 아닌 거 모르나, 왕모래 같은 밥알을 씹고 또 씹어도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맛김을 꺼내 쌓아 먹으니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목이 메어 간간이 물을 마셔야 했다. 체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하고 아침을 마쳤지만 기분이 영 아니었다.
아이들이 무소속이라 집안 분위기가 썩 좋지 않다. 그 뒷바라지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내가 불쌍하기도 하다. 아침 일찍 나가 학원에서 몸부림치는 취준생 딸내미를 위해 도시락을 준비한다. 보통 일이 아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지 않은 아들은 해가 중천이 되어서야 일어난다. 그놈을 위해 찬거리를 만들어 준비한다. 그놈이 일찍 일어나 출근시간에 맞추어 밥만 먹어도 김치 하나 달랑 올려놓친 않았을 것이다.
아침을 먹지 않고 출근해서 해결하는 방법도 있다. 구내식당에서 저렴하게 아침을 준비하여 제공한다. 몇 번 이용해보았지만 혼자 먹는 아침이 썩 좋아 보지 않는다. 띄엄띄엄 앉아 먹는 모습들이 처량하기 그지없다. 아침밥을 구내식당에서 해결하는 부류가 따로 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총각들이 대부분이고 듬성듬성 머리 희끗한 분들도 있다. 여성분들의 거의 없다. 아침을 맛있게 먹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빈속을 채우기 위한 수단인 것 같다. 외모 역시 단정치 못하다. 바쁘지만 않다면 아침식사는 집에서 해결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부부간의 관계도 소원해진 것 같다. 신비감이 떨어진 것도 있겠지만 워낙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사에 혹사당하다 보니 사랑타령할 새가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쏟는 정성은 지나치리만큼 높다. 아이들에게 관심을 두는 것을 나무랄 바는 아니지만 한 이불 덮고 자는 부부로서 소 닭 보듯 하면 서운한 것이다. 아이들에게 하는 정성 중 단 1%만이라도 관심을 주었으면 한다.
우리가 자랄 때는 거의 방목하다시피 들과 산으로 뛰어다니며 스스로 자랐다. 잠 잘 때와 끼니때만 집에서 해결하고 거의 밖에서 시간을 보냈다. 엄마 아빠 역시 농사일에 바빠서 아이들을 챙길 시간도 없었다. 그렇지만 아프지 않고 잘 자랐다. 아무리 바빠도 뜨거운 밥을 해서 먹였다. 엄마의 자식 사랑이 지극정성이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엄마의 자식 사랑은 끝이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부부금슬은 좋았던 것 같다. 집집마다 아이들이 바글바글 한 것을 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