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2억짜리 하산주

말까시 2017. 1. 22. 12:02

◇ 2억짜리 하산주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불금, 특별한 약속이 없어도 설레는 마음 주체할 길이 없습니다. 수시로 휴대폰을 열어보는 것은 이미 습관화된 지 오래지요. 지난 금요일 뜻하지 않은 모임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섯 명이 모여 술잔을 비우며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중년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 뻔하지 않습니까. 요즘 최대 화두는 순실이 국정 농단 사건, 부동산, 건강 문제, 자식농사 등으로 전개되지요. 술이 두순배 돌았을 때, 한 지인이 2억짜리 하산주를 먹게 된 이야기를 풀어 놓자 관심 집중 경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2014년 주말 어데 갈 데도 없고 해서 마나님과 남한산성을 가게 되었습니다. 주말이라 그런지 산성 올라가는 길에 산님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리 높지 않은 남한산성은 수도권에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소지요. 특히,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명성이 나 있습니다. 한 시간 남짓 오르다 보면 산성이 보입니다. 흐르는 땀방울을 훔치고 자리를 펴고 앉아 있으면 금방 시원해집니다. 가지고 간 도시락을 까먹는 것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산성 한 바퀴 돌고 하산하는 것으로 보통 산행을 마칩니다.

 

맹물파들이야 하산 후 곧바로 집으로 향하지만 주당들은 그냥 갈수 없지요. 아내도 술을 조금 하는 편이라 근처 주막에 들러 한 잔 하기로 했습니다. 정상주로 막걸리가 최고지만 하산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해물파전에 막걸리 한 잔이면 오장 육부가 시원해지면서 짜릿한 전율이 온몸에 퍼지는 기분, 이거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렵지요. 둘이 얼마나 마시겠습니까. 두병을 까고 나와 전철까지 걷게 되었습니다. 등산 후 마시는 술맛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지요.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했으니 기분이 오죽 좋았겠습니까. 그렇게 손을 잡고 걷는데 모델하우스가 보이는 것이 아닙니까. 요즘 인테리어가 어떻게 변했을까 구경 삼아 보기로 했습니다.

 

아파트 구조와 인테리어는 궁궐이었습니다. 한동안 입을 벌리고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동안 한 곳에서 20년을 넘게 살다 보니 너무 몰랐던 것입니다. 살고 있는 집이 너무 낡아 이사를 가기는 가야 하는데 망설이고 있던 참에 휘황찬란한 아파트를 보고 나니 사고 싶은 욕망이 넘쳐 났습니다. 아내 역시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모델하우스를 나와 바로 부동산으로 달려갔습니다. 분양가에 약간의 피가 붙은 매물이 몇 개가 나와 있었습니다. 2014년만 해도 부동산 경기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실수요자인데 경기의 좋고 나쁨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바로 도장을 찍었습니다.

 

계약을 하고 난 후로 경기가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경기 부양책에 힘입어 프리미엄이 무섭게 올라갔습니다. 2015년 기존 집을 매각하고 위례 신도시로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먼지 나는 신도시 좀 불편은 했지만 나날이 올라가는 집값에 대수가 되지 못 했습니다. 2015년부터 불기 시작한 부동산 열기는 2016년이 되자 광풍이 불었습니다. 그 덕에 2억이란 프리미엄이 붙어 일순간에 부자 대열에 오른 기분입니다. 지금은 주춤하지만 앞으로도 더 오를 수 있는 호재가 무궁무진 한 위례 신도시, 다시는 그런 곳이 없을 것입니다.

 

복도 많은 분이지요. 아무 생각 없이 산행했다가 횡재를 했으니 말입니다. 몇 날 며칠 발품 팔고 전문가를 쫓아다니며 공부를 해도 성공하는 사람 그렇게 많지 않은데, 하늘이 도운 것이지요. 보통 사람들은 한 곳에 정착하면 그곳이 영원한 보금자리라 생각하고 안주하게 되지요. 그러면 돈 못 번다고 합니다. 새집 들어가 5년 정도 살면 특별한 호재가 없는 이상 보합세를 유지하는 것이 정설이라고 합니다. 이때를 기해 처분하라는 것입니다. 기분 좋게 취해 한수 배우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