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말리는 아들 사랑
◇ 못 말리는 아들 사랑
다섯 시간을 허비한 끝에 운전대를 놓아야 했다. 평소보다 두 배 이상이 걸린 샘이다. 벌초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귀경길은 졸음과의 싸움이었다. 새벽에 출발하여 벌초하고 서둘러 상경했지만 너나없이 같은 마음이 작용한 것 같다. 땀 흘리고 먹는 점심은 꿀맛이다. 그 덕에 졸음과의 싸움은 상경하는 내내 나를 괴롭혔다. 휴게소에 들러 냉수 찜질을 했지만 피로가 가실 줄 모른다. '졸음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도박이다.'라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쉼터에서 휴식을 취한 끝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녹다운 지경이다. 아내는 상차림을 하고 있었다. 불고기 냄새가 진동을 한다. 담근 술 한 잔을 따랐다. 목을 축였다. 빈속에 술이 들어가니 찌릿 찌릿 오장 육부가 춤을 춘다. 상추에 불고기를 얹고 된장을 발랐다. 입에 넣었다. 단물이 입안 가득 고인다. 언제 피로가 있었냐는 듯 원기가 되살아난다. 희미하던 사물이 선명하다. 마누라가 예뻐 보인다. 피로회복제가 따로 없다.
아내의 우렁찬 외침에 딸내미가 나왔다. 두어 점 먹어보곤 젓가락을 놓는다. 맛있는 불고기를 멀리하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통닭을 시켰다는 것이다. 일주일 내내 공부하느라 통닭 먹을 시간이 없는 딸내미는 주말을 기해 통닭을 시켜 먹곤 했었다. 그날이 오늘인 것이다. 같이 먹자고 한다. 주문한지 꽤 되었는데도 도착하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딸내미는 초인종이 울리기만 학수고대했다.
아뿔싸! 통닭은 맥주가 있어야 하는데, 딸내미에게 사 올 것을 주문했지만 거절한다. 다시 아내에게 부탁했지만 대가를 요구한다. 만 원짜리 상품권을 주었지만 현찰을 달라 한다. 배가 불러도 단단히 불렀는가 보다. 시원한 맥주가 눈에 아른거린다. 어쩔 수 없이 배춧잎 한 장을 꺼내 주었다.
배달된 포장을 뜯자마자 통통한 다리가 여럿이었다. “퍽퍽한 가슴이 싫어 날개와 다리가 섞인 것으로 주문했다"라는 딸내미는 “맛있다”를 연발했다. 두 개를 먹었음에도 배는 남산만 했다. 평소 즐겨 먹지 않는 통닭, 불고기를 먹었음에도 그 맛이 일품이었다. 하나 더 먹으려는 순간 저지를 한다. 배 나온단다.“ 좀 있으면 힘들게 공부하는 아들이 오는데, 아들 먹을 것을 남겨 놓아야 하지 않느냐"라며 나무란다. 벌초하고 힘들게 상경한 나에겐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아들만 챙기는 아내가 미웠다.
밥 먹는 시간을 빼고 공부에만 올인 하는 아들은 통닭을 보자마자 화색이 돈다. “어서 먹어라. 공부하느라 힘들었지” 코맹맹이 소리로 아들을 챙기는 아내는 바짝 붙어 가진 아양을 떨었다. 자정이 넘었음에도 아들 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과일을 깎아 대령하면서 나에겐 먹어보란 소리도 없다. 토마토 주스를 만들어 나르던 아내는 남은 찌꺼기를 나에게 주며 마셔보란다. 어이가 없었다. 오장 육부가 뒤틀렸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갈매왕국에 입성하련 참아야 했다.
자식 사랑을 나무랄 순 없다. “아들! 아들!” 하면서 졸졸 따라다니며 받들어 모시는 아내는, 난 뒷전이고 아들은 상전이다. 그렇게 아들이 좋을까. 우리 집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드라마 역시 단골 메뉴다. 아들은 듬직하고 딸내미는 집안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복덩어리다. 딸내미는 아빠가 챙겨야 한다는 진실에 부합하고자 좋은 말을 선택하여 던져 보지만 여의치 않다. 취준생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무슨 말인들 듣고 싶겠는가. 딸내미의 심정을 십분 이해한다. “힘내라. 딸아! 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