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살뜰

갈매왕국(26)

말까시 2016. 8. 14. 13:54

◇ 후덕한 인심이 넉넉한 담터 철물점

 

더위란 말을 어떻게 표현해야 실감 날까. 가마솥, 찜통에 비유해보지만 한계를 느낀다.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땀방울을 훔치는 것도 장난이 아니다. 연신 부채질을 하는 할아버지는 힘에 부친 듯 멈춤을 반복한다. 폭염이 난무하는 한반도, 날마다 최고기온을 갈아치우고 있다. 내일이면 말복, 이미 입추도 지났건만 더위란 놈의 횡포는 그칠 줄 모른다.

 

주말이면 갈매왕국을 순찰하는 것이 습관화되었다. 장거리 여행을 하고 올 때 역시  들리는 곳이 갈매왕국이다. 보지 않으면 궁금해서 못 살 지경이다. 이쯤 되면 중병에 걸렸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가족 역시 궁금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저녁식사를 할 때면 으레 새 소식 없나 하고 물어보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워낙 더운 나머지 달구지 안에서 살펴보는 것으로 순찰을 마쳤다. 귀가를 위해 육사 골프장으로 향했다. 47번 국도를 달리다 우회전했다. 구길을 따라 양옆으로 늘어선 상점은 시골 읍내와 흡사했다. 담터에서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추어탕도 보인다. 계속하여 이어지는 길 따라 철물점, 건축자재, 공구상가, 인테리어 업체가 간판을 내걸고 영업 중에 있었다. 무엇인가 사고자 했던 것이 머리에 스친다. 차를 멈추었다.

 

작은 철물점 앞에 주차하고 나와 보니 뜨거운 열기가 숨을 막히게 한다. 가게 앞에는 목장갑을 비롯하여 노끈, 고무호스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각종 철물들이 가득했다. 어디 앉을 자리도 없었다. 비좁은 공간에 선풍기는 뜨거운 바람을 일으켰다. 무엇을 찾는지 주인장은 바쁘게 움직였다.

 

“사포 한 장 주십시오” 자전거가 말썽을 부렸었다. 펑크가 난 것이다. 아들 것도 마찬가지로 운행을 못하고 있었다. 수리점에 맞기면 교체를 강요한다. 비용이 곱절이다. 일직이 본드, 패치는 구매하여 집에 있다. 사포가 없었던 것이다. 철물점을 보자 사포가 떠오른 것이다.

 

하던 일을 멈춘 사장은 “몇 번을 원합니까?” 하고는 사포를 뒤적거렸다. 사포는 번호를 부여하여 판매하고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어디에 쓰려고 합니까?” 되물었다. “180번 주세요. 자전거 튜브 펑크 난 곳을 때우려고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금세 찾아 내 손에 쥐여주었다.


호주머니를 뒤져보니 지갑이 없었다. 아뿔싸, 바쁘게 나오는 바람에 지갑을 챙겨오지 못 했던 것이다. 다행히 휴대폰 케이스에 비상용 카드가 있었다. “사장님 미안합니다. 지갑을 놓고 오는 바람에 카드로 결제할 수밖에 없네요” 잠시 고민하던 사장님은 그냥 가져가라고 했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단골로 이용하겠다"는 말로 다시 한 번 고마움을 전했다.

 

후덕한 인심을 지닌 사장님은 시골장터 국밥처럼 친근함이 넘쳐흘렀다. 얼굴에서 엿보이는 순박함은 깍쟁이 도시 사람과는 딴판이었다. 갈매 원주민으로서 오랫동안 장사를 한 사장님은 친절함이 몸에 밴 것 같았다. 한동네 사람도 아닌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여유, 말할 때마다 번지는 미소, 상점을 나서는 나에게 넙죽 절을 하는 사장님은 상도가 무엇인지 아는 보기 드문 상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