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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울어야 했던 막내

말까시 2016. 2. 5. 09:01

 

◇ 설날 아침 울어야 했던 막내

우리 고유의 명절 설이 코앞에 다가왔다. 마음이 들떠 있다. 사무실에도 빈자리가 보인다. 벌써 귀성길에 올랐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가다 서다를 반복해도 고향 가는 길은 마냥 즐겁다. 부모, 형제, 친구들을 볼 수 있으니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 유년시절 뛰놀던 산과 들도 어떻게 변했을까.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산을 오르던 오솔길 역시 없어졌을 것이다. 나무, 돌, 냇가가 있는 고향산천은 아름다운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설날 아침 울어야 했다. 즐거워야 할 명절에 눈물을 빼고 있으니 얼마나 속상했겠는가. 일 년 중 새 옷과 새신을 신는 날이 추석과 설날이다. 대목 장날 엄마는 때때옷과 검정 고무신을 사 왔다. 설날 아니면 절대 입어서는 안 된다면서 장롱에 넣고 자물쇠를 채웠다. 한 번만 입어보자 했지만 용납하지 않았다. 장롱 앞에서 맴돌며 상상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때 그 시절은 왜 그리 하루가 멀게만 느껴졌는지 기다림에 지쳐 하소연도 했다.

농경사회에 돈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곡식을 내다 파는 방법 밖에 없다. 육체노동으로 얻어진 질 좋은 곡식은 돈을 만들기 위해 먹을 수 없었다. 한두 집 부자를 빼고는 누구나 먹고사는 일에 전력투구를 해야 한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삐 움직이지 않으면 굶어야 했다. 과자는 구경도 못 했다. 고물을 주어다가 엿 바꿔 먹는 것이 유일한 달콤함이다. 산과 들에 나가 열매를 따거나 칡뿌리를 캐먹는 것이 주전부리의 전부다. 이렇게 어려운 시절에 설빔은 귀하고 귀한 보석과도 같은 것이다.

난 막내다. 귀여움도 받았지만 설움도 많았다. 형은 새 옷을 입었지만 난 항상 헌 옷을 입어야 했다. 형 옷은 누더기가 다 된 옷도 버리지 않고 여지없이 내 몸에 걸쳐졌다. 물질이 귀했던 시절에 버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꿰매 입고 더 이상 입을 수 없으면 이불을 만들었다. 바닥이 달아 구멍 난 고무신은 비누와 바꾸었다. 망자의 옷과 소품을 빼고는 모든 것이 재활용되었다.

바짓가랑이는 너무 길어 바닥에 끌렸다. 팔소매 역시 손을 덮고도 남았다. 고무신은 헐렁했다. 이대로 밖에 나갔다가는 놀림당할 것이 뻔하다. 그렇다고 명절에 헌 옷을 입을 수는 없는 것이다. 엄마는 바늘과 실을 꺼내어 긴 소매와 바지를 줄였다. 고무신은 어쩔 수 없어 그냥 신어야 했다. 엄마는 자식의 치수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막내는 더 이상 물려줄 동생이 없기 때문에 넉넉한 옷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눈물을 흘리며 투정을 부리는 자식이 얼마나 야속했을까.

알뜰살뜰 한 푼 두 푼 모아 자식뒷바라지에 전념했던 엄마는 아프다. 나이 먹어 늙어지면 성한 곳이 없다 하지만 엄마는 거동이 불편하다. 중풍으로 쓰러진 이후 위태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가까이 모시고 싶지만 여의치 않다. 이제 엄마가 나에게 투정을 부린다. 힘이 없고 사는 재미가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빨리 달려가 투정을 받아주어야 할 텐데 어릴 적 설날처럼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