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술과 함께 한 피서

말까시 2015. 8. 17. 15:09

 

 

◇ 술과 함께 한 피서

▲ 거제도 몽돌해수욕장

어딘가 떠난다는 것은 마음을 들뜨게 한다. 매년 같은 시기에 떠나는 여름휴가는 힐링하기 좋은 기회다. 이번 휴가는 임시공휴일 덕에 일주일을 마음껏 놀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처가와 본가를 들러 문안 인사드리고 통영 거제를 거쳐 상경하여 근교 계곡에서 물장구치고 강원도 강가에서 음주·가무를 즐기는 동안 마신 주량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심신이 피로할 만도 한데 거뜬한 것을 보면 휴가는 역시 좋은 치유의 방법이 아닌가 한다.

고향, 말만 들어도 추억이 되살아난다. 소싯적 조금은 부족했지만, 산과 들로 뛰어놀며 자연공부 무척 했다. 조무래기들이 모여 뛰어놀다 보면 스승이 따로 없어도 배울 것이 한둘이 아니다. 그렇게 뛰어놀던 산과 들이 많이도 변했다. 초가지붕이 즐비했던 마을은 울긋불긋 지붕으로 변신 탈바꿈했다. 외지인이 들어와 새로 지은 집들은 별장을 방불케 했다. 산은 숲이 우거져 오솔길이 사라졌다. 길고양이는 이곳에도 무리를 이루며 낯선 사람을 경계했다. 반딧불이 사라진 밤은 가로등이 불을 밝혔다. 어머니 품에서 여름밤을 나고 나니 머리가 맑아졌고 눈은 더욱더 초롱해졌다.

처가를 향해 달리는 달구지 안의 공기가 상큼해지면서 이야기꽃이 피었다. 본가를 갈 때의 직직한 얼굴과는 달리 밝아진 아내는 말이 많았다. 역시 자기가 태어난 곳에 간다는 것만으로도 화색이 돌고 생기발랄한 것을 보면 휴가지로 고향만큼 좋은 곳은 없는 것 같다.

장인 장모는 70대 초반으로 왕성한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그 많은 농사일을 손수 일구어 얻은 이익을 자식들에게 나누어준다. 창고에 항공모함처럼 커다란 김치냉장고가 두 대나 있었다. 그 안에 묵은지가 성에를 두르고 맛있게 익어가고 있었다. 무청 김치, 죽순나물, 토란대 무침, 추어탕으로 차린 밥상은 웰빙식에 진수성찬이었다. 추어탕은 처남이 냇가에서 잡은 토종미꾸라지에 사레기를 넣고 끓여 구수하고 맛깔스러웠다. 보약을 먹은 거나 진배없다. 상경하는 내내 차는 무거웠다. 트렁크에 가득 실린 먹거리들이 브레이크를 밀리게 한 것이다. 당분간 시장에 가지 않아도 밥상은 풍성할 것 같다.

사실, 처가를 가기 전에 통영을 들렀다. 한려수도를 한 바퀴 도는 유람선을 타고나서 다음날 거제도 몽돌해수욕장에서 바다구경을 했다. 시간이 남아 포로수용소도 관람했다. 점심으로 칼국수를 주문했는데 좀 특이했다. 된장을 풀고 꽃게를 넣어 국물을 낸 것까지 좋았는데 맛은 별로였다. 저녁에 다찌로 유명한 맛집에 들러 문을 여는 순간 가득 찬 사람들에 놀랐다. 문전 박대를 당하고 옆집에서 맛본 다찌는 소문과는 많이 달랐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는데 처가 본가에서 먹은 음식과는 달리 관광지에서의 맛본 먹거리는 실망이었다. 아직도 휴가는 남았다. 시골에서 공수해온 무청 김치와 묵은지를 얼린 다음 계곡으로 달렸다. 물을 첨벙거리며 노는 재미는 유명관광지보다 백배는 나았다. 노릇노릇 익은 삼겹살에 얼음이 스며있는 묵은지를 찢어 걸쳐 먹는 맛은 꿀맛이었다. 그날 마신 술은 여행 중에 마셨던 것보다 곱빼기는 되는 것 같다. 술과 함께한 올해 피서는 처가 본가를 거쳐 효도하고 관광지를 들려 새로운 것을 맛보는 뜻 깊은 휴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