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금
◇ 풍금 대지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무성한 숲은 산을 감추고 갈대는 하늘 높은지 모르고 치솟고 있다. 논에 물이 들어가 벼가 심어지고 보리는 누렇게 익어 바람에 출렁인다. 뽕나무에 달린 오디는 검은 진주를 방불케 하고 빨갛게 익은 앵두는 침샘을 자극한다. 해는 점점 높아지고 그림자는 나를 바짝 따라붙는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이들 노랫소리에 초등시절 풍금 반주에 맞추어 부르던 <과꽃>이 생각난다. 음악 시간이 되면 풍금을 가져와야 한다. 학교에는 풍금이 많지 않다. 아이들 네 명이 달라붙어야 겨우 옮겨올 수가 있다. 잘못하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 난다. 고가의 풍금이 고장 나기라도 하면 여간 낭패가 아니다. 낑낑대며 옮겨온 풍금은 교탁 옆에 놓기가 무섭게 달려든 아이들에 의해 두들겨졌다. 박자도 음정도 맞지 않는 풍금 소리는 소음이 되어 복도로 흩어진다. 선생님께 들키기라도 하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그 시절 <과꽃>을 너무나 잘 부른 친구가 있었다. 얼굴도 예쁘면서 표정이 너무나 귀여워 한동안 노래를 듣다 보면 넋이 나갈 정도였다. 선생님은 발판을 밟아 풍금을 연주했다. 두 손을 마주잡고 흔들며 부르는 노래는 고개가 좌우로 흔들릴 때마다 꾀꼬리 같은 소리를 내뿜었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한 끝에 대회에 나가 상도 많이 탔다. 동네에 말썽꾸러기 형이 있었다. 공부는 뒷전이고 노는 것이 주특기인 형은 온갖 못된 짓은 다 하고 다녔다. 일요일 조무래기들을 끌어 모아 학교로 갔다. 널따란 운동장에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공을 찼다. 운동장 저편에 있는 작두 펌프를 품어 물을 마시고 차고 또 차다 보니 싫증이 났다. 말썽꾸러기 형이 풍금을 치고 싶다는 것이다. 교실 문을 열어보니 열리지 않았다. 일요일이라 문을 잠가 놓았던 것이다. 일직은 보통 여선생님이 한다. 형은 문들 두들기라고 명령을 내렸다. 인기척이 없었다. 더 세게 두들기라고 명령을 내리는 형은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우린 막대기를 주어와 마구 두들겼다. 잠시 후 문을 열고 나타난 선생님은 3학년 담임선생님이었다. 여리고 가냘픈 여선생님이다. “저기 저 형이 풍금을 치고 싶다는데요.” 선생님은 안된다고 딱 잘라 말하고는 문을 닫고 사라졌다. 굳게 잠긴 문은 열리지 않았다. 다시 두들기라는 명령에 북을 치듯 신나게 두들겼다. 한참을 두들기자 다시 나타난 선생님은 우리를 나무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라지면 두들기고 나타나면 멈추고를 반복했지만, 풍금 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 정례조회가 있어 운동장에 집결했다. 앞으로나란히를 반복한 끝에 줄이 반듯해졌다. 무섭기로 소문난 4학년 담임선생님이 단상에 오르더니만 큰말 놈들 다 나오라 했다. “어제 학교에서 선생님을 놀린 새끼들은 우측으로 나와” 매서운 눈초리는 우릴 죽일 것만 같았다. 늦게 나오는 친구를 향해 발길질이 가해졌다. “단상으로 올라와 이새끼들아” 한명씩 단상에 올라 종아리를 맞아야 했다. 얼마나 아프던지 눈물이 찔끔했다. 전교생 앞에서 개망신을 당한 풍금 사건은 두고두고 회자되어 미소 짓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