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염치도 미제다.

말까시 2015. 3. 20. 10:30

 

    

      ◇ 염치도 미제다.

 

아직 방안은 어둠이 가시지 않았다. 새벽잠이 없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천정을 주시하고 있었다. 부시덕 거리기라도 하면 마누라한테 혼난다. 받줄로 꽁꽁 묶인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있는데 가슴팍으로 밀고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느낌이 좋았다. 이십년 넘게 느껴본 손길이었다. ‘이것이 무슨 일이단가. 불금이라고 식전부터 불을 질러버릴 십상인가.’ 침을 꼴깍 삼키고는 자는 척 했다.

 

어둠이 가시고 창에 빛이 들어왔다.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아내의 손길을 뿌리 칠 수가 없었다. 한동안 꼼작 없이 누워 있어야 했다. 잠시 후 아내는 자세를 고쳐 잡고는 녹두를 집중 공략했다.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고 표시 낼 수는 없었다. 오른쪽 왼쪽 녹두를 번갈아 문지르던 아내는 낮은 목소리로 한마디 한다. “자기야! 오늘이 월급날이지. 머 없어. 그리고 성과급 나오는 거 다 알고 있거든. 한 이백만원만 더 얹어 주면 안 될까” 정신이 버쩍 들었다. 잔뜩 기대를 하고  기다렸는데 생각이 따로 놀고 있었다. 부풀어 올랐던 녹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염치도 미제지’ 아침도 스스로 해결하고 점심은 말할 것도 없이 회사에서 해결하는 불쌍한 신세로 전락한지가 오래다. 저녁역시 늦게 오는 아내 덕에 도맡아 하다시피 했다. 해준 것 하나 없이 피땀 흘려 벌어온 금쪽같은 돈을 단돈 십 원도 빠짐없이 송금하라는 마누라가 제정신인가. 가슴팍을 제멋대로 더듬고 있던 손을 확 뿌리치고는 돌아서 누웠다. “이 아저씨가 간덩이가 부었나. 마누라 손길을 뿌리치다니 어디서 배워먹은 행동인가. 참말로 더러워서 다시는 당신 곁에 자는가 봐라. 아이 치사해” 콧방귀를 뀌고는 나가 버렸다.  

 

늘 돈타령하는 아내는 돈이 나오는 날, 돈이 나오는 구멍은 귀신 같이 알고 있다. “아마도 자기는 나 몰래 감추어 놓은 돈이 제법 될 것이야. 내가 짐작컨데 ○천만원은 되지. 놀라는 것을 보니 맞는가 보네. 혼자만 쓰지 말고 좀 풀어라. 아이들 용돈도 주고 봄도 되었으니 원피스 하나만 사주라. 딸레미 라식수술도 한다고 하는데, 그리고 지환이 바지도 하나 사주어야 해. 소파도 찢어져서 너덜거리는거 안보여. 누가 올까 겁난단 말이야. 제발 집안일에 관심 좀 가져라. 그 많은 돈 싸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닌데, 이참에 거실 환경 확 바꾸어 보자고, 내말 안 들려 왜 답이 없어 신랑 놈아.”

 

집안일에 관심을 두지 않는 다는 마누라 말에 동의 할 수 없다. “화장실 막힌 것 뚫은 것이 누구여. 샤워 부스 새는 물 잡은 것은 이웃집 남잔가. 싱크대 아래 물이 새는 것을 허리 굽혀 땜질하여 막은 것이 누구야. 세면대에 물이 내려가지 않아 꼬챙이로 머리카락을 뽑아내 시원스럽게 내려가게 한 사람은 로버트란 말인가. 절약해보겠다고 블라인더를 인터넷으로 구매하여 낑낑거리며 못질하고 달아 햇빛을 자유자제로 조절하게 한 사람은 나가 아니고 누구란 말인가.”

 

셀 수 없이 많은 일을 남의 손에 맡겼다면 가정경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 했을 것이다. 고마운 것도 모르고 무조건 챙기려고만 하는 아내가 왠지 측은해 보였다. 그동안 벌어다 준돈이 충분하지 못했을까. 투잡을 해서라도 아내에게 들어가는 금전을 늘려야 한단 말인가. 불가능한 일이다. 오늘 귀가하다가 로또나 한 장 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