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바람이 휘몰아친 백운대

<백운대 정상>
매서운 추위가 몰아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귀때기를 떼었다 붙이기를 반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들머리에서 날머리까지 깊이 눌러쓴 모자를 벗을 수가 없었다. 8부능선부터 눈이 얼음 되어 빙판을 이루었다. 아이젠을 착용했지만 조심조심 걸어야했다. 정상을 향할수록 벌떡 일어난 돌들은 앞길을 방해 했다. 너나없이 한마음이 된 15명의 전사들은 매섭게 몰아치는 칼바람을 헤치고 북한산을 완주했다.
들머리의 급경사는 턱밑까지 숨이 차오르게 했다.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100여 미터 남짓 올랐을 뿐인데 숨이 가빠 발길이 더뎠다. 가다서기를 반복한 끝에 대동문에 이르렀다. 잔설이 많이 남아 있었다. 낙엽이 쌓인 곳에 둥지를 틀고 점심을 먹었다. 칼바람이 부는 언덕이었지만 비닐 천막 덕분에 편안히 식사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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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돔안에서의 점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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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병의 소주를 작살낸 주당들 |
성곽을 따라 이어진 능선은 얼음이었다. 돌과 돌 사이 박혀 있는 얼음은 몹시 미끄러웠다. 응달진 곳에는 하얀 눈이 그대로 쌓여 운치를 더했다. 워낙 추운 날씨라 많지 않은 등산객들이었지만 거북이 거름이었다. 잘못하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황천길을 재촉하는 지름길이다. 선두와 후미와의 거리는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앞만 보고 걸을 수밖에 없었다. 동장대를 지나 노적봉에 이르렀을 때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무수히 많은 돌밭을 지나 계단을 오르고 내림을 반복 한 끝에 백운봉암문을 통과했다. 우이동으로 내려가는 돌계단은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급경사 빙판길을 어찌 내려 간 단말인가. 눈앞이 캄캄했다. 일단 백운대 정상을 향하여 발길을 돌렸다. 암벽을 타고 오르는 난코스다. 밧줄을 당기고 돌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 정상에 다다랐다. 태극기가 찢어 질 듯 나부꼈다.
백운대 정상은 사방팔방 막힘이 없었다. 서울 하늘 아래 펼쳐진 빌딩 숲 위로 미세먼지가 자욱했다. 소각장 굴뚝 끝에는 하얀 연기가 선명했다. 당인리 발전소 역시 마찬가지다. 인수봉을 옆으로 수락산과 불암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팔당에서부터 이어진 한강은 서울을 가로질러 김포까지 휘감아 물빛을 발산했다. 백운대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길은 더욱더 아찔했다. 바위와 바위를 자유자제로 날아다니는 까마귀가 부러웠다.
암문에서부터 하산길은 매우 위험했다. 아이젠을 착용했지만 다리가 후들 거렸다.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 초능력을 발휘한 15명의 전사들은 선운각에 무사히 안착했다. 선운각은 격동의 세월이 몰아칠 때 청운각, 삼청각, 대원각과 쌍벽을 이루는 대표적인 비밀 요정이다.
목이 말랐다. 맥주에 소주를 말아 단숨에 들이켰다. 뽕잎을 갈아 만든 밥을 비롯하여 등심구이를 안주삼아 무수히 많은 술잔을 비웠다. 꽁꽁 얼었던 몸에 알코올이 들어가자 일순간에 녹아내렸다. 얼굴에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사르르 녹아내린 육신은 취기가 더해짐에 따라 언성이 높아 졌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한동안 이어졌다. 평소보다 많은 인원이 참석한 백운대 산행은 색 다른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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