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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특명

말까시 2015. 2. 2. 15:40

 

 

◇ 아내의 명령 

 

금년 겨울은 매섭기가 순한 양이다. 눈도 많이 내리지 않아 그것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게는 모자람이 없지 않았다. 추위가 매섭게 몰아칠 때면 장독대가 얼어 터졌다는 뉴스가 종종 나오곤 했었는데 요 근래 그런 소식을 들어본 적 없다. 추위와 아랑곳 없이 얼음과 눈을 이용하여 볼거리를 제공하는 겨울축제로 재미를 본 지방소도시들은 지역경제에 큰 효과를 냈다고 자화자찬한다. 입춘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이들이 즐겨 찾는 썰매장도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아이들이 입맛이 없다고 난리다. 주말에 시간이 남아 마트에 들렸다. 사시사철 먹을 것이 넘쳐 나는 마트에는 보는 족족 사고 싶다. 아무 생각 없이 시장을 보다가는 냉장고만 혹사시킨다. 먹지 않는 음식들 때문에 쉼 없이 돌아가는 냉장고는 에너지를 잡아먹는 귀신이다. 여름 한철 돌리는 에어컨은 확연히 드러나지만 냉장고는 철따라 비교 할 수 없다. 식재료를 조금만 줄여도 전기요금을 확연히 줄일 수 있다.  

 

마트에 진열된 채소가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봄동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던 것이다. 노지에서 겨울을 난 봄동은 가을배추에 비하여 볼품이 없다. 알이 차지 않고 잎이 파래 질길 것 같지만 겉절이를 해놓으면 그렇게 연할 수가 없다. 고소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아삭하게 씹히며 느껴지는 식감은 김장김치에 질린 입맛을 돋우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봄나물이 나오기까지 푸성귀로써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봄동은 봄을 알리는 전령사가 아닌가 싶다. 한단 살까 하다가 시골에서 올라온 가을배추가 있어 포기 했다.  

 

잃어버린 입맛을 무엇으로 살릴 수 있을까. 일단 앞다리 살을 한 덩어리 담았다. 구워 먹고 수육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는 앞다리 살은 우리가족이 즐겨먹는 돼지고기 부위다. 수육을 만들기 위해서는 향신료가 들어가야 한다. 돼지고기 특유의 잡냄새를 제거 할 수 있는 마늘과 생강도 담았다. 솥단지 아래에 깔기 위한 대파, 양파도 샀다. 수육을 맛있게 먹기 위해선 막걸리도 빼놓을 수 없다. 최소한도로 산다고 했지만 장바구니 하나 가득하다.  

 

재수한다고 공부에 여념이 없는 아들놈이나 취업준비에 밤잠을 설치는 딸내미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색다른 음식을 해야 한다. 압력솥에 준비해놓은 고기와 마늘, 파, 생강, 양파를 넣고 불을 지폈다. 고기가 익는 동안 마른 멸치의 내장을 꺼내 김장김치와 통마늘을 넣고 볶아 냈다. 다 볶아진 다음 참기름 한 수저를 넣어 고소함을 더했다. 모양새를 내기 위해 깨소금도 뿌렸다.  

 

잘 익은 앞다리 살을 얇게 썰어 담아냈다. 두부도 살짝 데쳐 볶아낸 김치 주위에 놓았다. 바라만 보아도 침이 절로 나왔다. 공부에 지친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이런 젠장 몇 점 먹어보더니 젓가락을 놓는 것이 아닌가. 딸내미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맛이 없을 만도 하다. 이달이 지나면 두 놈 다 무소속으로 전락하고 만다. 고민거리가 산더미 같은 아이들에게 입맛이 있을 리가 없다. 외식을 원하는 눈치다. “이번 주말 근사한 곳을 물색하여 달아난 입맛을 되돌려 놓으라.”는 중책이 주어졌다. 아내의 명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