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북한산 힐링 산행

말까시 2015. 1. 26. 15:14

 


◇ 북한산 힐링 산행 

 

어디를 가고자 하는 날이 다가올수록 설레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질 것이다. 전날, 잠을 설치는 바람에 수십 번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아내에게 구박을 받았다. 다리를 올려놓아도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순한 양이었는데 앙칼지게 나무라는 것을 보니 살쾡이가 따로 없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아내는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것이라 착각을 하는 것이 아닐까. 오산이다.  

 

겨울답지 않게 포근한 날씨는 주머니에 손을 넣게 하지 않았다. 이른 시각이라 그런지 지하철 안에는 자리가 텅텅 비었다. 젊은 처자들은 보이지 않고 나이 드신 분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결혼식에 가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멋을 낸 여인은 화장을 고치고 또 고쳤다. 잠을 청했지만 눈은 더 초롱초롱해졌다. 동에서 서까지 가로질러 가는 내내 뛰는 가슴은 진정 되지 않았다.

 

서부시외버스 터미널은 7080그때의 그 건물이었다. 대합실에는 연탄난로가 공기를 데웠고 나무의자는 휴식처가 되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회기 한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약속시간이 다가오자 울긋불긋 차려 입은 산님들로 가득했다. 삼삼오오 담소를 나누며 터트린 폭소는 대합실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갑장이란 이유만으로 인사하는 순간 금방 친구가 되어 깔깔 거렸다.  

 

버스를 타고 산성입구까지 가는 길은 지루했다. 산님들로 가득한 버스 안에는 공기가 탁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여인들은 못마땅한 듯 입을 실룩거렸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있다 보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워낙 민감한 사회에 살다보니 움직이는 것조차 조심해야 한다. 추행이란 단어에 엮이기라도 하면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다. 숨소리조차 낼 수 없는 산성길 가는 길은 검은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 것과 다름없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산성입구에는 찬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역시 산은 산인가 보다.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고나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진 산님들이 내는 숨소리는 거칠었다. 듬성듬성 녹지 않은 얼음이 갈 길을 방해했지만 거침없이 나아갔다. 가끔 여인의 비명소리에 놀란 새들이 퍼덕거리며 날아갔다. 앙상한 가지는 잔바람에도 가늘게 떨었다. 눈이 녹아 드러난 낙엽들은 가을빛은 아니었지만 포근했다.  

 

산성을 오르는 길 좌우 명당에는 사찰이 즐비했다. 또 다른 사찰을 짓기 위해 파 해쳐졌다. 계곡은 구불구불 차가웠다. 얼음 속에서 흐르는 물은 쫄쫄 거렸다. 봄이 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중성문을 지나면서 산성 안으로 접어들었다. 행궁은 보이지 않았지만 예전에 왕이 기거하며 호령을 했던 기운이 엿보였다. 능선까지 가는 길은 그렇게 험난하지 않아 쉽게 오를 수 있었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을 뿌릴 것만 같았다.  

 

독한 술을 반주로 점심을 먹고 능선을 따라 이동했다. 본격적인 눈밭이 이어졌다. 고도가 높아 녹지 않았던 것이다. 동장대를 지나 대동문에 이르자 눈발이 날렸다. 이무슨 행운이란 말인가. 눈 속에 파묻힌 여인들은 그림을 박느라 쟁탈전을 버렸다. 하산 길은 수월했다. 미끄럼을 타듯 내려오다 보니 눈은 비로 변했다.

 

하루의 피로를 쓰디쓴 소주로 달랬고 목청껏 노래를 부르며 근심걱정을 털어냈다. 불빛이 흔들렸다. 마구 퍼마신 알코올은 초점을 잃게 했다. 아리따운 여인의 윤곽도 흐릿했고 발걸음도 휘청 넘어지기 직전이다.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육중한 전철에 몸을 실었다. 산은 또 다른 산으로 우리들을 끌어 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