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로
하늘도 얼고 사람도 얼고 세상 모든 것들이 얼었다. 칼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귀때기는 떨어질 것만 같고 움츠린 육신은 넘어질까 두렵다. 내린 눈은 빙판 되어 가는 길 방해하고 두툼한 솜바지는 행동에 제약을 가한다. 포장마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가 유난히도 희다. 호호 불어 가며 먹은 오뎅맛이 왜 이리 좋을까. 추워야 제 맛이 나는 어묵은 겨울 길거리 음식의 대명사다. 이렇게 추위가 맹위를 떨칠 때 화로는 안방의 공기를 훈훈하게 했다.
화로는 무쇠로 만들어졌다. 놋쇠로 만든 화로는 부잣집에서나 볼 수 있다. 무쇠로 만든 화로는 무게가 상당하다. 저학년 아이들이 들어 옮기기에는 벅차다. 요강과 함께 안방에 한자리를 차지한 화로는 방안의 공기를 훈훈하게 할뿐 아니라 빙 둘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기에 딱 좋은 자리를 만들어 준다. 그 뿐만이 아니다. 감자나 고구마를 화로에 묻어 두었다가 출출할 때 먹으면 구수하니 맛이 좋다.
저녁밥을 하고 나면 아궁이에는 알불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엄마는 고무래를 이용하여 알불을 긁어냈다. 붉게 물든 알불은 화로에 담기자마자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의 열기는 뚝배기 된장을 끓이고도 남을 화력을 지니고 있다. 화로불이 쉽게 사그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알불위에 재를 수북이 덮었다. 안방으로 운반된 화로는 밥을 먹고 난후 한참동안 열기를 보존했다.
전기다리미가 없던 시절 화로에 담겨진 알불은 넓적한 쇠로 만들어진 접시위에 얹어져 옷을 다리는데 이용 되었다. 좁은 부분에 구김살을 펴고 두루마리 동정을 다리는데 사용된 인두의 열을 제공하는 것도 화로다. 인두를 갖고 놀다가 화상을 입는 아이들도 있었다. 인두와 화로를 잘못다루다가 엎어지기라도 하면 난리가 난다. 물이 귀했던 시절 불을 끄기 위해 요강단지속의 오줌을 붓기도 했다.
시골산골에서 마른 오징어를 먹을 수 있는 행운을 갖는다는 것은 별 따기만치 어렵다. 노가리 역시 귀한 존재다. 겨울 농한기에 아버지는 주막에서 머물러 있는 시간이 많았다. 주막에는 과자도 있고 노가리 오징어도 있었다. 아무나 사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는 술만 마시는 것이 아니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하여 화토를 치기도 했다. 작은 것이 커져 놀음으로 번진 경우도 많았다.
술이 거하게 취한 아버지는 웃옷을 벗고는 동전 몇 개를 던져 주었다.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아마도 돈푼깨나 딴 것 같았다. 호주머니에서는 오징어와 먹다 남은 노가리가 나왔다. 이게 웬 횡재란 말인가. 오징어와 노가리를 화로에 구웠다. 구수한 냄새는 방안을 가득 메웠다. 입안에 가득고인 침은 자꾸만 목구멍으로 넘어 갔다. 오징어 맛도 좋았지만 노릇노릇 구워진 노가리의 맛이 훨씬 좋았다. 그때 그 맛을 어디서 느껴볼 수 있을까. 각종 향신료 등 첨가물에 길들여진 미각이 과거 원초적 감각으로 되돌아갈리 만무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쇠로 만들어진 화로가 뒤뜰 마루 밑에 있었다. 잔뜩 녹이 쓸었지만 구멍 난 곳은 없었다. 흑백텔레비전보다 더 오래된 화로가 골동품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라 여겼지만 집수리 하면서 나온 폐기물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쇠붙이라고 생긴 것은 고물상이 와서 다 가져가 버린 것이다. 녹을 벗겨내고 기름을 발라 광을 내면 장식품으로도 탈바꿈 할 수 있었는데 사라진 화로가 너무나 아깝다. 안방에 열기를 내주고 이야기꽃을 피우게 했던 화로는 엄마 품만큼이나 따스한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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