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멍석
벼 베기가 끝난 논에는 그루터기가 선명하다. 아직 거두어가지 않은 짚들이 널브러져 있다. 바싹 마른 짚은 소먹이와 일상용기를 만드는데 요긴하게 쓰인다. 겨울철 난방과 취사를 하기 위하여 짚은 땔감으로도 탈바꿈한다. 메주를 만들어 처마에 매달아 놓는 재료도 짚이다. 초가지붕을 덮고 있는 짚은 이삼년에 한번은 갈아주어야 한다. 이렇게 짚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재료이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나면 농한기가 시작된다. 지금처럼 하우스농사가 없었던 소싯적 시골은 별로 할 일이 없다. 아버지들은 사랑방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막걸리 파티를 하고 화토를 치며 시간을 보냈다. 무료함을 달래려고 도박에 빠져 들어 가산을 탕진하는 경우도 있었다. 동물들이야 겨울잠을 자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농한기 할 일이 없는 남정네들은 말썽만 피우기 일쑤였다. 며칠씩 사랑방에 눌러 앉아 도박을 하는 아버지들은 엄마들의 원성에도 안중에 없었다. 워낙 가부장적인 시절이었기에 엄마들의 의견은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나락가마니를 놀음에 날려버리고 농약 먹고 자살한 사람도 있었다.
근면성실한 사람들은 겨울이 오면 멍석, 삼태기, 둥우리를 만들었다. 멍석을 만들기 위해선 대단한 끈기가 필요하다. 질이 좋은 짚을 골라 껍질을 벗기고 다듬어 새끼를 꼬아야 한다. 꼬아진 새끼를 여러 가닥 늘어뜨리고 좌로 우로 엮어나가는 작업을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겨울동안 하나의 멍석을 완성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틈틈이 멍석 만드는 일에 매진하다보면 어느새 봄이 성큼 다가온다.
멍석을 만들기 위해선 사랑방이 있어야 한다. 사랑방에 군불을 때고 작업을 하다보면 콧속에 먼지가 들어가 새까맣게 묻어나온다. 손마디마다 굳은살이 베기고 허리가 아파 장시간 작업을 할 수 없다. 베를 짜는 것처럼 지루하기도 하거니와 혼자 하는 일이기에 인내가 필요하다. 잠시 쉬고자 나갔다가 사람들과 어울리다보면 이삼일 건너뛰는 경우가 있다. 시작과 함께 하루도 빠짐없이 매진해도 겨울동안 완성하기 힘든 멍석은 고가에 팔렸다.
이렇게 만들어진 멍석은 곡식을 말리는데 이용되었다. 멍석은 습기에 취약하여 비를 맞추어 버리면 건조하기가 쉽지 않다. 습기 먹은 곳에 마르지 못한 부분에는 썩어 검게 변하기도 한다. 보관 역시 잘 못하면 쥐가 갉아 먹어 헤지기도 한다. 동네잔치가 있는 날에는 이웃집 멍석을 빌려 마당에 깔고 손님을 맞이했다. 하루 종일 손님을 받다 보면 음식물이 흘리고 막걸리가 엎질러지면 멍석은 회복불능의 상태로 변할 수도 있다. 의례히 있는 일이기에 이웃 간에 항의를 할 수 없다.
플라스틱제품에 밀려 멍석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민속촌이나 가야 볼 수 있다. 가끔 시골집 뒷마당에 보면 방치되어 있는 멍석을 볼 수 있다. 삭아서 쓸 수가 없다. 손으로 잡으면 우수수 부서진다. 마당에 멍석을 깔아 놓고 밤하늘에 별을 보며 꿈을 키웠던 시절이 엊그젠데 그 멍석은 썩어 없어지고 나는 반백이 되어 비틀거리고 있다. 그 옛날 소중하게 쓰여 졌던 짚들이 논바닥에 내버려져 있는 것을 볼때 마다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난 천생 촌놈인가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