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뇌에 찬 아들
지척에 두고도 한번 가봐야 한다는 마음만 있었지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마침 아들 수능도 끝나고 해서 나들이 계획을 말하자 흔쾌히 따라 나섰다. 시험이 끝난 후의 허탈감을 어떻게 달래줄까 망설이던 차에 ‘하늘공원’에 가자는 아내의 제안에 의기투합한 것이다. 머리통이 커버린 딸레미는 애원하는 것도 무시하고 집에 있는 다고 한다. 구름이 살짝 드리워진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만 같았다.
오후 내부순환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한 끝에 ‘하늘공원’에 도착했지만 주차장이 만원으로 한참을 방황해야 했다. 쓰레기 더미가 공원으로 탈바꿈한 ‘하늘공원’은 하늘과 닿은 듯 거대했다. 곳곳에 계단을 만들어 놓아 오르는 데 수월했다. 아이들도 계단을 오르고 강아지도 따라 올랐다.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늘어선 산책길에는 한가했다. 간혹 사진을 촬영하는 분들이 오갈뿐 너무나 한적하여 대화나누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아들과 나란히 걷다가 자연스럽게 수능이야기가 전개되었다. 모든 것이 그렇듯 지난 것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다시 한 번 도전하고 싶다는 아들은 약간은 방황 하듯 진로를 결정하지 못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정상이 보였다.
정상에는 억새밭이 끝없이 펼쳐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진 촬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산과는 달리 각양각색의 복장을 한 나들이객들은 멋지고 화려했다. 젊은 처자들의 발랄한 모습은 맑고 깨끗했다. 딱 달라붙은 청바지 차림의 청춘들은 오솔길을 따라 그림을 그리고 걷고 또 걸었다. 바람이 일렁일 때마다 사각거리는 억새는 하얀 꽃을 피워 사람을 끌어 모았다. 저위에 하얀 눈이 내린다면 얼마나 멋진 풍경이 만들어질까. 상상만 해도 가슴이 뜨거워지고 머리가 맑았다.
한강이 저만치 아래 있었다. 저 멀리 63빌딩도 저물어가는 햇빛에 반사되어 노랗게 빛났다. 인천앞바다로 떨어지는 해는 희미했다. 구름사이를 비집고 나왔다가 이내 사라졌다. 아직 어둠은 내리지 않았다. 산책하는 사람들은 좀처럼 내려가지 않았다. 남녀노소가 어울려 억새밭을 즐기는 풍경이 너무나 여유로워 보였다. 땀을 흘리며 힘겹게 오르는 산행과는 달리 또 다른 멋을 느낄 수가 있었다. 편안함이 좋다는 것을 보니 나도 늙긴 늙었나보다.
멋진 풍광에는 관심이 없는 듯 아들과 아내는 계속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걱정이 많이 가는 아내는 가끔 한숨을 내 쉬기도 했다.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누구나 가는 길을 가는 것이 무난한 삶이 될 수 있다”고 의견을 제시 했지만 생각이 많이 달랐다. “어차피 한번인 인생 생각은 자유이지만 목표가 뚜렷하지 않으면 밀어 줄 수 없다”고 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점심 먹고 나선지가 한나절, 배가 고플 만도 하다. 억새밭에는 먹을 것이 없었다. 단지 수도시설이 있어 목을 축일 수는 있었다. 수산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회 센터는 팔고자 하는 상인과 사고자 하는 손님들이 흥정을 하느라 시끌벅적했다. 그 일원에 편승하여 농어 한 마리와 산 낙지를 샀다. 토막 난 산 낙지는 마지막까지 꿈틀거렸다. 생명력이 대단했다. 고뇌에 찬 아들은 꿈틀거리는 낙지를 어렵게 떼어 씹고 또 씹었다. 아직 결정은 하지 않았지만 다시 한번 도전하고 싶은 마음을 포기 하지 않는 아들이 안쓰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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