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손이 많이 가는 전통음식 메주 만들기

말까시 2014. 11. 6. 14:27

 


◇ 손이 많이 가는 전통 음식 메주 만들기 

 

가을걷이는 벼 베기로 시작해서 콩을 거두는 것으로 끝난다. 고구마나 깨를 수확하는 것도 가을걷이라 할 수 있지만 벼와 콩을 수확하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김장을 하기 위하여 무나 배추도 서리가 내리기 전에 수확하지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벼를 베어 탈곡하여 둑집에 저장하고 콩을 뽑아 말린 후 털어 자루에 보관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나면 김장을 하고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었다. 

 

부엌에는 국이나 찌개를 끓일 수 있도록 가장 안쪽에 작은 솥이 있고 밥을 주로 할 수 있는 솥이 중앙에 설치되어 있다. 거대한 가마솥은 바깥쪽에 배치되어 위용을 자랑했다. 솥의 용도에 따라 가장 자주 사용하는 밥솥은 중앙에 배치하여 난방을 도맡아 담당했다. 쇠죽을 끓이거나 콩을 삶을 때 쓰였던 가마솥은 운반하기 좋게 출입문 가까이에 설치해놓았다. 조상님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메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물질을 제거해야 한다. 멍석에 콩을 부어 놓고 상처 난 것이나 벌레 먹은 것은 가려내야 한다. 노랗고 윤기가 나는 콩들만을 추려서 세척을 했다. 워낙 많은 콩을 세척하기 위하여 아버지들도 거들었다. 운반하는 것은 엄마들의 힘으론 역부족이다. 아버지들은 커다란 고무다라에 담아 지계로 지어 날랐다. 리어커가 있는 집에서는 조무래기들이 합심해서 끌어 날랐다.

 

메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마솥에 콩을 넣고 오랫동안 삶아야 한다. 장시간 불을 때려면 장작은 필수다. 산에서 죽은 나무를 베어 장작을 패야 한다. 나도 일직이 장작을 패다가 어긋나는 바람에 정강이를 내리치는 실수를 범하여 한동안 고생한 적이 있다. 도끼날이 정강이를 찍었으니 얼마나 아프겠는가. 병원에 가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쑥을 뜯어 지혈을 시키는 것으로 치료는 끝난다. 지금도 그때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가마솥에 김이 맹렬하게 뿜어져 나오면 기다란 주걱으로 저어 주어야 한다. 밑에 눌러 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메주콩을 삶는 냄새 또한 구수하여 한주먹 쥐어 입에 넣고 먹곤 했다. 고구마를 같이 넣어 삶아 먹기도 했다. 강한 열과 콩에서 나오는 냄새가 배어 물이 많고 맛을 더했다. 어느 정도 삶아 지면 장작개비를 꺼내 남아 있는 숯불로 은은하게 뜸을 들였다. 내 기억으로는 한나절 내내 콩을 삶은 것 같다.

 

도와주지 않으면 엄마 혼자 메주를 만들 수가 없다. 한량인 아버지는 사랑방에 놀러가 없고 천생 내가 도와주어야 했다. 엄마가 사각 틀에 넣으면 내가 올라가 발로 꼭꼭 밟았다. 틀에서 꺼낸 메주는 손으로 다듬어 짚으로 묶어 처마에 매달았다. 안방 선반에 메달아 놓은 집들은 겨울 내내 메주냄새가 진동을 했다. 메주는 발효과정을 거쳐 단백질이 분해되면 구수한 냄새가 난다.  

 

이듬해 봄 깨끗이 세척하여 소금물에 담가 숙성하면 간장과 된장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날마다 먹고 있는 간장과 된장은 콩이 열을 받아 삶아지고 발효과정을 거쳐 만들어낸 대표적인 전통음식이다. 김치와 함께 없어서는 안 될 된장과 간장을 직접 담가 먹는 집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아직까진 시골에서 공수해와 먹고 있지만 언제까지 시골의 장맛을 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연로하신 장모님은 죽는 그날까지 움직여 보낸다고 한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