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 수 있다. 배터리교환
모처럼 햇살이 비추어 화사하다. 연일 쏟아지던 빗님이 잠시 머뭇거리는 틈을 탄 태양은 강한 빛을 쏘아대고 있다. 티끌하나 없는 맑은 공기 사이를 뚫고 내리쬐는 태양은 따갑기 까지 하다. 남쪽지방의 비피해가 어마어마하다. 가을장마치고는 거대한 빗줄기가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퍼붓는 바람에 피해가 큰 것 같다. 폭우에 떠내려가던 버스에 탑승했던 사망자와 실종자분들의 명복을 빌어본다.
며칠 전 아내가 타고 다니는 달구지가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다고 배터리를 교환한다고 했다. 문을 잘못 닫아 방전된 이후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아내는 여러 번 미등을 끄지 않고 방치하는 바람에 배터리가 방전되어 보험서비스를 받은 전력이 있다. 방전된 배터리는 수명이 짧아진다는 상식은 누구나 알 것이다. 일단 시동이 걸리면 좀 더 지켜보자고 했다. 하지만 길바닥에 서면 낭패라며 극구 교환한다고 하는 아내는 막무가내였다.
배터리정도야 누구나 손쉽게 갈수 있다. 대형마트에 가면 차종별로 배터리를 판매한다. 아내에게 사올 것을 주문했지만 귀찮다며 투덜거린다. 손수 갈면 이만 원 정도는 절약 할 수 있다. 무거운 배터리를 어떻게 사오냐며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했다. 주말까지 기다리면 해결해준다고 설득했지만 카센터에 맡기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동차 용품을 사본 경험이 없고 배터리 지식이 없는 아내는 내키지 않는 듯 머뭇거렸다. 내가 직접 교환한다는 것 자체를 믿지 못하는 것 같기도 했다. 자동차관리법상에도 배터리, 엔진오일 등은 누구나 교환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보닛을 열고 너트 몇 개만 풀고 조이면 해결될 것을 구지 카센터에 의뢰할 필요가 있는가. 공임 비를 벌수 있고 폐배터리는 고물상에 팔면 오천 원을 받을 수가 있다.
“편하게 삽시다. 몇푼벌겠다고 손에 기름 묻히고 비지땀을 흘릴 필요가 있습니까. 그렇게 궁박하지 않는 살림인데 스타일 구기지 말고 그냥 카센터에 맡깁시다.” 내 의도를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주장만을 굽히지 않는 아내가 미웠다. 편안함을 추구하다 보면 손 하나 까닥하기 싫어진다. 결국 게으름 병이 도져 아무것도 하기 싫게 된다. 이만 오천 원을 벌려면 알바시급으로 계산해도 다섯 시간 이상의 노동을 해야 한다.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나의 적극적인 설득으로 배터리를 사온 아내는 “제대로 못하기만 해봐라” 하면서 엄포를 놓았다. 주차장에 내려갔다. 에너지 절약 때문인지 통로 외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차를 옮길까 하다가 핸드폰 전등을 이용해 비추어보니 작업을 할 수가 있었다. 아내는 전등을 비추어 주고 나는 나사를 풀어 교환했다. 바라다보고 있던 아내는 별거 아니네 하면서 노파심을 풀었다.
겔겔 거리던 시동이 시원스럽게 걸렸다. 몇 번의 시범을 보이자 미소를 머금은 아내는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기술 좋은데, 다음엔 엔진오일도 갈아보시구려” 엔진 오일은 폐오일을 처리하는 것이 마땅치 않아 손수 하기는 쉽지가 않다. 배터리를 손수 교환하여 벌게 된 돈을 마침 여행을 간다고 하는 딸내미용돈에 보태주었다. 폐배터리도 고물상에 가서 현금으로 교환해 올 것을 주문했다. “자기가 하면 안 돼?” “아니 되옵니다. 직접 경험을 해보십시오.” 비비꼬는 아내를 밀치고 트렁크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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