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장마가 계속되다보니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냈다. 장마철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것이 비가 아니던가. 살수차를 동원하여 뿌려보지만 역부족이다.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농심은 하늘만 쳐다본 채 망연자실하고 있다. 덩달아 올라간 기온은 에너지를 마구 빼앗아 가고 예년보다 일찍 나타난 매미는 무엇이 불만인지 죽어라 울고 있다. 푸른 숲이 우거지고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날 밤 반딧불을 잡는 꼬마들이 득실 거렸다.
반딧불이 반짝이는 밤, 한 무리의 단발머리가스나들이 골목길을 따라 올라 갔다. 가로등도 없는 시골길을 서슴없이 가는 것을 보니 자주 다니던 길이 틀림없어 보인다. 골목 끝자락 초가집에 이르자 담벼락에 몸을 붙이고 새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가. 이 밤중에 무슨 새소리가 날까. 의심스런 눈치로 문을 열어 제친 아낙은 고개를 내밀고 밖을 내다본다. “저놈의 새가 미쳤나 오밤중에 울고 지랄이여” 혀를 차며 문을 닫아버렸다.
뒷간에서 일을 보고 있던 머시마는 올 것이 왔구나 하고 쾌재를 불렀다. 저것들이 나하고 놀자는 심본데 바로 나가 버리면 채신머리가 없는 법, 잠자코 지켜보기로 했다. 새소리를 냈다가 다시 발정 난 고양이처럼 “야옹” 하는 것이 아닌가. 안달이 나도 단단히 났는가 보다. 저녁 먹은 것이 잘못되어 화장실을 들락거렸더니 기력이 바닥났다. 똥고에 남아 있는 마지막 한 방울 까지 쥐어짜고 일을 마무리 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빛나는 것은 별이요. 반짝이는 것은 반딧불이었다. 머시마는 허리춤을 치켜세우고 거적때기를 젖히고 밖으로 나왔다. 요것들이 나를 보았으면 한 번 더 신호를 보냈을 텐데 인기척이 없다. 대문을 열고 나가 담벼락을 더듬어 갔다. 소리가 났던 지점을 상기하며 가던 중, 무엇인가 움직이는 물체가 감지되었다. 바로 새소리를 냈던 가스나들이었다.
“야인마! 이렇게 늦게 나오면 어쩌나” 반가운 나머지 달려드는 가스나들은 머시마를 와락 끌어않았다. “이년들이 지금 뭣들 하는 거야” 두 손으로 밀쳐낸 머시마는 가스나들을 이끌고 상철내 집으로 갔다. 사랑방에는 사내들이 득실 거렸다. 이미 술과 과자를 사다 놓고 오기만을 학수고대 하고 있었다. 사내들은 가스나들을 보자마자 반가워 죽겠다는 듯이 어쩔 줄 몰라 했다.
진공관이 빛나는 전축에서는 고고음악이 흘러 나왔다. 상철이는 공고 전자과를 다닌 관계로 칼라박스를 만들어 사랑방에 설치해 놓았다. 노랫가락에 따라 오색등이 반짝이는 사랑방은 나이트클럽을 방불케 했다. 음악과 빛의 향연이 펼쳐지는 사랑방에서 샴페인을 마시며 흥을 돋웠다. 이미 많이 놀아본 솜씨들이었다. 누가 뭐랄 것 없이 일어선 이팔청춘들은 발을 움직이고 손을 흔들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격하게 춤을 추자 부딪쳤다. 신났다. 용광로처럼 뜨거워졌을 무렵 방문이 열리는 것이 아닌가. 선배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가스나들과 놀고 있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무지막지하게 주먹이 날아들었다. 안경도 깨지고 입술이 터져 선혈이 낭자했다. 하지만 선배들에게 대들 수는 없었다. 시골선배는 하늘이고 위계질서는 군대 못지않다. 한바탕 매타작을 받은 후 훈계를 들어야 했다.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이래도 뒤는 거야. 너희들이 공부하는 학생들 맞아. 다시는 어울려 다니지 말라.” 했다.
그 날 이후로 선배들에게 들키지 않는 산속 깊숙한 곳에 아지트를 만들어 놓고 모여 놀았다. 그때 배운 소주 덕에 지금도 주당이 되어 즐겨먹고 있다. 안주 찾아 삼만 리, 이웃집 닭을 비롯하여 안주가 될 만한 것은 모조리 서리를 하여 조달했다. 아 옛날이여! 사랑방에서 고고음악에 장단을 맞추고 춤을 추었던 단말머리가스나들과 박박머리머시마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하고 살까. 그때 들었던 고고음악 중에 탐존슨의 (Keep on running)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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