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천왕봉은 나를 품지 않았다.

말까시 2014. 7. 7. 10:54

 

 

◇ 천왕봉은 나를 품지 않았다.

 

 

 

 

새벽공기를 가르며 쏜살 같이 달려간 달구지는 중산리 탐방센터 앞에 내려놓았다. 하늘은 회색빛 구름이 드리워져 해님은 보이지 않았다. 법계사를 가기 위해 마이크로버스를 탔다. 구불구불 푸른 숲속을 달리는 버스는 굉음을 냈다. 달리던 버스는 팔백고지 즈음에서 멈추었다. 종점이었다. 법계사까지 4키로 정도를 올라야 했다. 주말임에도 등산객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조용한 산길을 쉬엄쉬엄 오른 끝에 로타리대피소에 도착했다.

 

하늘은 잔뜩 찌푸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라면을 끓였다. 이미 도착한 산님들은 맛있는 식사를 하고 있었다. 여기 저기 지지고 볶고 구워진 음식들이 내뿜는 냄새는 미각을 자극했다. 입안에 고인 침을 주체할 수 없어서 삼켜야 했다. 꽁치 통조림과 라면이 끓자 무수한 젓가락 공격을 받았다. 맑은 공기가 흐르는 계곡에서의 식사는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라면과 묵은지, 곰치짱아치, 홍어무침으로 허기를 면하고 나니 천하를 얻은 것 같았다.

 

어두워질 무렵 하루 밤 묵어야 할 법계사에 도착했다. 천사백고지에 있는 법계사는 자그마한 절이었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저녁식사를 했다. 고추장과 된장 그리고 직접 재배한 상추가 구미를 당겼다. 고산지대이다 보니 잎은 작았지만 고소했다. 콩알이 살아 있는 된장은 쌈밥의 소스로 그만 한 것이 없었다. 구수한 된장의 맛을 본 후 상추를 넣고 고추장을 발라 비빔밥을 만들었다. 참기름은 없었지만 고추장에서 나오는 풍미는 비빔밥 대열로 만들었다. 만찬에 곡차가 절실히 생각났지만 신성한 곳이었기에 맹물로 입가심을 하는 것으로 저녁을 마쳤다.

 

 

법계사 전경 

범종 


 

여덟시 취침이다. 숙소는 텔레비전도 없고 컴퓨터도 없었다. DMB도 잡히지 않았다. 골방 같은 숙소에 여덟 명이 자야 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낯선 곳에서의 하루 밤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코를 고는 것은 둘째 치고 방구를 뽕뽕 껴대는 바람에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드르렁 킁, 여기저기 코고는 소리는 쌍발기가 내는 소음과 별반 다름이 없었다. 새벽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 슬며시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러 젠장, 천왕봉에 올라야 하는데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여섯시에 기상하여 아침을 먹고 빗물을 맞아가며 발길을 옮겼다. 비옷은 움직이는 것에 방해가 되었고 일행과 대화를 차단했다. 앞만 보고 묵묵히 올라야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천왕봉을 찍고 하산하고 있었다. 부러웠다. 빗방울과 땀방울이 뒤범벅이 된 몰골은 물에 빠진 생쥐처럼 초라했다. 돌산과 계단을 오르는 산길은 빗방울이 앞을 가려 무척이나 힘들었다. 가다서기를 반복하는 횟수가 잦아지자 시간은 길었다. 우여곡절 끝에 1915미터 천왕봉에 다다랐다.

 

정상에는 서 있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골짜기에서 상승기류를 타고 올라오는 바람은 엄청났다. 금방이라도 산님들을 날려 보낼 것만 같았다. 자욱한 비구름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가 없었다. 좁아터진 표시석 주변은 사진촬영을 위한 산님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표시석을 배경으로 그림을 담는 것은 치열한 경쟁이었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일출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밤새 불공을 드려도 시원찮을 판에 잠만 콜콜 잤으니 무엇을 바라겠는가. 정상을 찍은 것으로 만족하고 하산을 서둘러야 했다. 천왕봉은 나를 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