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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가 칠백인 '닭대가리 같은 놈'

말까시 2014. 6. 26. 15:00

 

 

◇ 당구가 칠백인 닭대가리 같은 놈

 

고향에는 넓은 들판이 있다. 주로 벼농사를 지었다. 파란 하늘아래 황금물결이 넘실거릴 때면 수많은 새들이 날아와 장관을 이룬다. 새들과의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들판의 끝자락에 향토방위를 담당하는 부대가 있었다. 예비군을 관리하는 작은 부대로 현역이 열 명 내외고 대부분 방위들이 근무했다. 이곳에서 예비군 동원훈련을 하고 실역미필자교육을 했다. 방위들은 도시락을 싸들고 출퇴근을 한다. 나 역시 그 일원이었다. 그 안에 닭대가리 같은 놈이 있었다.

 

나는 아는 형의 추천으로 행정병으로 차출되었다. 아무리 작은 부대일지라도 행정반에는 작전과와 인사계가 있었다. 과라고 해야 대위가 과장이고 나머지는 현역과 방위들이다. 인사계는 중위가 부관 겸 계장을 했다. 이렇게 작은 부대에서 무사 무탈하게 군복무를 마칠 수 있었다. 소싯적부터 산과 들로 뛰어다니며 단련된 체력과 불철주야 학업에 충실한 결과이다. 싹수가 노랗다면 추천을 해주 않았을 것이다. 자칭 범생이라 할 수 있다.

 

행정반에는 선배도 있고 중학교 동기생도 있었다. 나를 추천해준 동내 형 역시 행정반에서 일 잘하기로 소문난 으뜸병사였다. 그 형 밑에서 열심히 일을 배웠다. 가리키는 선임을 사수라 했다. 사수도 명예가 있었다. 빠른 시일 내에 업무 파악을 하고 기량을 아낌없이 발휘하라면서 열심히 가르쳐 주었다. 사수의 얼굴에 먹칠하지 않도록 쉼 없이 공부하고 글씨 연습에 매진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빠르게 적응 할 수 있었다. 사수와 사수 간에도 경쟁이 붙었다.

 

방위근무기간은 짧았다. 일을 가르쳐 쓸 만하면 나가는 것에 과장은 늘 불만이었다. 현역병이 모자라 어쩔 수 없었다. 행정병으로 차출되어도 심사에 떨어지면 땅군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땅군으로 돌아가면 날마다 고된 훈련을 받아야 하고 군기가 엄격해 몽둥이찜질도 견뎌내야 하는 무서운 곳이다. 더군다나 행정반에 있다가 땅군으로 밀려나면 편안한 생활을 했다해서 집중공격대상이었다. 선후배가 뒤범벅이 된 향토사단은 유교사상이 투철한 병사는 근무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어느 날 아침 신병이 배치 받아 왔다. 가만히 보니 고등학교 2년 선배였다. 학교 다닐 때 주먹깨나 쓰는 문제아였다. 어떻게 행정병으로 추천을 받아 왔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배와 같이 근무하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그 선배는 역내에서는 존칭을 쓰는 것처럼 흉내 내다가 퇴근 후 불만을 토로 하고 겁박까지 했다. 일이라도 잘하면 밉지 않겠지만 매사 허점투성이였다. 후광이 두터운지 모르지만 땅군으로 쫓겨 가진 않았다.

 

행정반에서 하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한문을 모르고서는 근무하기가 쉽지 않다. 그 선배는 하는 일마다 실수투성이라 과장님한데 무척이나 혼났다. 욕이 난무하는 군대이니 만큼 참아야 했다. “예이! 닭대가리 같은 놈아 이걸 일이라고 했냐.” 육두문자를 날린 과장님은 서류를 집어던졌다. “과장님 제가 이레 봐도 당구가 칠백입니다. 절대 닭대가리 아닙니다.” 되받아 치는 것이 아닌가. 과장님은 어이가 없는지 그냥 지 웃고 말았다. 시간이 흘러 내가 먼저 제대를 하고 그 선배역시 행정반에서 무사히 마쳤다. 닭대가리가 아닌 당구가 칠백인 선배님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