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까시 2014. 5. 26. 15:05

 

 

◇ 마을 대소사를 전해 주었던 빨래터

 

동네마다 마을 중앙에 큰 우물이 있다. 사시사철 쉼 없이 솟아나는 생명수는 식수로 사용되었고 빨래를 하는데 쓰였다. 마을 잔치가 있는 날이면 돼지를 잡는 곳이기도 하다. 도끼로 돼지머리를 내리치면 힘없이 주저 않는다. 숨이 끊어지기 전에 날카로운 칼로 목을 찔러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피를 양동이에 담아낸다. 선지는 순대를 만드는데 요긴하게 쓰인다. 간은 소금을 찍어 생식했다. 한동안 우물가 도랑은 선혈이 낭자했다. 집집마다 관정이 뚫리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자 물의 양도 적어졌다.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채 우물이란 상징적 존재로 남아있다.

 

동네 아낙들은 빨랫감을 머리에 이고 우물가로 모여든다.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빨래를 한다. 우물가 주변으로 둘러앉은 아낙들이 많아질수록 수다는 요란하다. 빨래터는 동네 대소사를 알 수 있는 소식통이기도 하다. 대처에 나가 있는 양철집 아들이 부자가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과 지지리도 가난했던 벽돌집 박가네 가족들이 야반도주를 했다는 좋지 않은 소식으로 이어지는 수다는 빨래가 끝날 때까지 끊이질 않는다.

 

빨래터 주위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오리도 있었고 개들도 나와 노니는 곳이다. 물이 있는 곳에는 오리들이 먹이 활동을 한다. 동네 개들은 목줄을 해서 집안에 가두어 두는 경우가 있지만 가끔은 목줄을 풀어주어 자유를 만끽하게 한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암캐들이 발정기가 되면 붙들어 놓은 수캐들이 정신을 못 차린다. 목줄을 끊고 달아나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모인 개들은 암캐를 차지하게 위하여 쟁탈전을 벌인다. 최후의 승자가 빨래터 앞에서 그 짓을 했던 것이다.

 

젊은 아낙들은 고개를 숙이고 창피함을 감추었다. 나이 드신 엄마들은 아이들 보기 민망하다며 물을 끼얹어 훼방을 놓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종종 보와 왔던 모습에 깔깔거리고 웃었다. 아무리 물을 뿌려 본들 지남철처럼 붙어 있는 개들을 떼어놓을 재간이 없다. 아이들은 점점 모여들어 킥킥 거린다. 난감한 엄마들은 빗자루를 가져와 마구 휘둘렀다. 필사적인 노력 끝에 사랑놀이를 멈추게 할 수 있었다. 그제야 새댁은 고개를 들고 물을 뿌려 상기된 얼굴을 식혔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우물청소를 한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삼각기둥을 만들어 물을 퍼낸다. 바닥이 보이면 들어가 이물질을 제거 한다. 동전도 나오고 머리빗에서부터 장난치며 갖고 놀았던 장난감도 나온다. 잘못하여 끈을 놓친 두레박도 녹이 잔뜩 쓸어 나온다. 우물청소를 하고 나면 간단한 음식을 차려 제를 올렸다. 마을 사람들의 생명수를 간직한 우물은 신성한 곳이다. 아무 탈 없이 무한히 제공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우물은 돌로 쌓아 만들어져 견고하고 튼튼했다. 위생적인 우물을 만든다며 돌을 허물고 시멘트로 만든 흄관으로 교체했다. 공사를 하고 난후 상당 기간은 물맛이 좋지 않았다. 마을마다 시멘트 통으로 바꾸는 공사가 대대적으로 이어졌다. 천년만년 이어져 내려온 우물을 허물어 버린 것이 못내 아쉽다. 한 여름에도 얼음장처럼 시원한 물을 제공했던 우물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아 기능을 상실했다. 하나둘 남아 있는 것조차 개발이란 것에 밀려 사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