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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하는 가칠 여(女)들

말까시 2014. 5. 20. 15:07

 

 

◇ 반항 하는 까칠 여(女)들

 

요즈음 여름처럼 무덥다. 선풍기를 꺼내 두었지만 틀지는 않았다. 저녁상에 가브리살이 올라와 뽕나무 뿌리로 담근 술을 마셨다. 그라스로 한 잔 밖에 마시지 않았는데 취기 올라 뿅 가버렸다. 선풍기를 틀지 않고서는 거실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아들 방에 있는 선풍기를 꺼내 돌렸다. 선풍기 바람이 피부를 스치고 지나자 시원함이 감돌았다. 모처럼 상쾌한 기분으로 텔레비전 시청에 들어갔다.

 

TV시청을 하는데 방해 공작이 시작된다. 설거지를 하면서 내는 소음이 거슬렸다. 살살 다루라 해도 막무가내다. 신발장을 정리 하는지 여닫는 문소리가 요란하다. 부엌과 거실 창고로 왔다 갔다 하면서 부산을 떠는 아내는 어떻게 방해가 되는지 안중에도 없었다. 짜증이 났다. 무어라 큰소리로 불만을 표시하려 했지만 워낙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라 포기하고 말았다.

 

안방에는 오래된 텔레비전이 하나 있다. 브라운관 텔레비전으로 고장이 없다. 화면은 작지만 그런대로 볼만하다. 초저녁에 방영되는 프로들은 여인들이 즐겨보는 드라마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책을 하나 꺼내 들었다. 가까운 도서관에서 빌려온 《사랑하지 말자》 김용옥이 지은 책이다. 처음엔 좀 재미가 있었는데 뒤로 갈수록 철학적인 이야기로 잠이 슬슬 밀려왔다. 거실로 나가야 했다. 오늘은 내가 보고자 하는 드라마가 방영되는 날이다.

 

‘트라이앵글’ 카지노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먹고 먹히는 건달들 이야기다. 이런 타입을 즐겨본다. 아내는 아직도 거실을 오가며 무엇인가를 했다. 시게바늘이 10시를 가리키자 광고를 필두로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데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아이! 짜증나,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냅다 소리를 질렀다. “당장 전원을 꺼주세여”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칭찬을 못해줄망정 화를 낸다고 거들 떠 보지도 않는다.

 

다시 한 번 화를 내자 잠잠 해졌다. 조폭과 건달 양아치들이 나누는 대화에 심취되어 재미를 더해갔다. 간간히 나오는 여인들의 표정도 빠르게 흡입하여 저장했다. 드라마전개가 매끄럽지는 못했지만 어느새 중반을 달리고 있었다. 갑자기 나온 딸내미가 탁자에 앉고서는 무엇인가를 하려했다. 고개를 돌려 텔레비전을 보았다가 나를 바라다본다. 드라마는 안중에도 없고 무엇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아내는 주무시지 않고 왜 취향도 아닌 드라마를 보느냐며 의아해 했다.

 

“아빠! 나 아르바이트 하면 안돼? 친구들 여름방학 때 다들 한다고 하는데”, 미소를 보내며 긍정의 답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절대 아니 되옵니다. 취업 공부나 하세요.” 딸내미는 사회경험도 쌓고 돈도 벌고 일석이조라 하면서 설득했지만 허락할 수 없었다. “허락하지 않아도 난 하고 말거야” 일방적으로 자기주장을 펴고는 얼굴을 붉히며 방으로 들어갔다.

 

아내와 딸내미의 반항에 가까운 시위로 드라마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1,000원을 내고 다시 봐야 할 판이다. 아내는 그렇다 치고 이제껏 고분고분했던 딸내미가 반항하며 불쾌한 표정을 짓고 사라진 것에 몹시 기분이 나빴다. 나름대로 심사숙고해서 결정한 일인데 절대란 말을 붙여 허락하지 않은 나를 못마땅해 하는 것 같았다. 아내 역시 아르바이트 하는 것에 반대를 했다. 취업공부에 열중했으면 좋겠는데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면 딱히 당해낼 재간이 없다. 딸내미 역시 까칠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