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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연휴 고향의 들녘에서

말까시 2014. 5. 7. 10:26

 

 

◇ 황금연휴 고향의 들녘에서

 

 

 

 

 

보통 삼일 이상 휴일이 이어질 때 황금연휴라 한다. 어디론가 나들이하기에 아주 좋은 기회이다. 이번연휴에는 어버이날도 다가오고 해서 고향을 가기로 했다. 엄마는 편찮은 몸을 이끌고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지팡이를 의지하여 마을 회관을 다녀오는 것조차 힘들어 하는 엄마는 죽지 못해 산다고 한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고통의 연속이라며 “그때 쓰러졌을 때 갔어야 했는데 빨리 죽어야만 끝나는 일이라”며 한숨을 내쉰다.

 

고향 가는 길은 명절을 방불케 했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여 고향에 도착하기까지 일곱 시간 넘게 걸렸다. 평소 두 배 이상을 길바닥에서 허비한샘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곤히 자는 아내는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고개가 흔들렸다. 앞으로 쓰러질까 오른손을 뻗어 지탱해주어야 했다.

 

온통 푸른색이다. 갈아엎은 논바닥을 제외하고 녹색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고향의 들녘은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밭고랑을 일구어 모종을 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농부의 이마에는 구슬땀이 흘렀다. 동네 어귀에 철골공장이 들어선다며 기초공사에 여념이 없는 중장비는 둔탁한 소음을 연발했다. 논과 밭이 파 일구어져 속살을 드러냈다. 빈 공간에는 철제빔을 비롯하여 건축자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푸른 들판을 야금야금 잠식하는 공장은 마을까지 집어 삼킬 것 같았다.

 

고사리도 없다. 두릅도 모가지가 꺾인 채로 상처나 울고 있었다. 산과 들을 헤매고 다녀 보았지만 나물이 없다. 초봄부터 외지인이 나타나 모조리 채취해갔다고 한다. 산나물이 지천에 깔려 있어 봄의 향취를 느끼기에 충분했는데 이젠 시장에서 사먹어야 할 판이다.  

 

 

01

02

03

대파 

엉겅퀴 

고들빼기꽃 

 

 

집안을 둘러보았다. 담벼락 밑에 자라고 있는 달래는 키가 웃자라 휘어져 있었다. 그 옆에 고들빼기는 꽃대를 길게 늘어트려 노란 꽃을 피웠다. 장독대 옆에 뿌리를 내린 엉겅퀴는 무성하게 자랐다. 집 뒤 토방아래 작은 공간에 자란 부추는 매운 기운을 내뿜었다. 뜨락을 따라 자란 딸기는 하얀 꽃을 피워 벌 나비를 불렀다. 대파는 부드러움을 탈피하고 씨를 만들어 날리기 직전이다. 마당 끝자락 수돗가에는 고구마가 싹을 틔어 제법 컸다. 넝쿨이 되어 잎이 무성하면 잘라 밭에 옮겨 심어야 한다.

 

텃밭에는 작년 가을걷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경운기가 없어 손수 땅을 파 일구어 골을 만들어야 했다. 땅을 파고 고르는 일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바싹 마른 콩대 고구마 넝쿨도 태웠다. 밭을 고르는 내내 구슬땀이 흘렀다. 마지막에 유기질 비료를 뿌리는 것으로 모종할 채비를 끝냈다. 고구마, 땅콩, 콩을 심을 예정이다.

 

저녁, 뽕잎을 따서 삶아 무쳤다. 돌나물과 부추를 간장과 고춧가루 참기름을 넣어 버무렸다. 몇 개 안 되는 두릅도 살짝 데쳤다. 돼지고기에 묵은지를 넣어 김치찌개도 끓였다. 푸성귀가 주류를 이룬 밥상은 초라했지만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우는 것은 일순간이었다. 산나물이 전해주는 그윽한 향기는 오래도록 머물렀다.

 

 

초라한 밥상 

추억에 보리밭 


 

해지고 어둠이 내렸다. 어릴 적 보았던 별이 초롱초롱 빛났다. 밤이 깊었지만 을씨년스런 새소리는 그칠 줄 몰랐다. 잠자리는 편했다. 엄마 옆에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다.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다. 아침햇살이 방안으로 스며들었다. 눈을 떴다. 어쩜 이렇게 머리가 맑을 수가 있을까. 방문을 열어 쏟아지는 햇살을 끌어 앉고 심호흡을 했다. 산에서 내려오는 공기는 소름을 돋게 했다. 맑고 깨끗한 공기는 오장육부를 지나 발끝까지 시원하게 했다. 언제나 반기는 고향의 들녘은 중장비에 상처를 입었지만 이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