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또 전화번호를 지워야 했다.

말까시 2014. 4. 29. 10:52

 

 

◇ 또 전화번호를 지워야 했다.

 

 

 

<장례식장 앞 정원>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일요일, 아침식사를 생략하고 서둘러 문상을 가야 했다. 올해 일흔한 살로 유명을 달리한 처외삼촌의 부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남쪽으로 가는 길 내내 비는 여름장마를 방불케 했다. 폐암선고를 받고 투병생활을 하다가 돈은 돈대로 다 날리고 독한 항암제로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신 삼촌이 불상타. 현대 의술, 이대로 좋은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처외삼촌은 시골에서 태어나 무일푼으로 시작해서 신발가게를 열어 줄곧 장사를 했다. 일층은 가게이고 이층은 살림집이었다. 밤낫주야 생활공간은 한울타리였다. 처가에 갈 때 들려보면 휘발성 물질로 인해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매일 같이 마시다 보니 후각이 마비되어 심각성을 몰랐던 것 같다. 휘발성물질 중에 톨루엔은 발암성물질로 알려져 있다.

 

신발가게를 기반으로 돈을 모아 주변에 땅을 사고 태양광발전에 투자하여 제법 많은 재산을 모았다. 딸만 넷으로 아들이 없는 것에 늘 아쉬워했다. 구남매 중에 넷째인 처외삼촌은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형제간에 우애도 좋아 베품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여동생인 장모사랑이 남달라 물신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장모님은 볼 때마다 삼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술을 나누며 좋은 말 씀 많이 해주신 착한 삼촌이었는데 이렇게 가시고 나니 아쉽고 서운하고 슬픔이 가시지 않는다.

 

삼 년 전인가. 주변의 권고로 종합건강검진을 받게 되었다. 고가의 검사 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X-Ray로는 보이지 않는 것을 CT촬영으로 좁쌀만 한 폐암을 발견했던 것이다. 어떠한 증상도 없이 끌려가다시피 한 검진에서 폐암이란 사실에 망연자실 실의에 빠져버렸다. 조기 발견해서 천만 다행이란 의사의 말에 희망을 걸고 치료에 들어갔다.

 

수술과 항암요법을 병행한 치료는 차도가 좋다는 의사의 말은 늘 똑 같았다. 항암제 및 방사능 치료는 멀쩡한 사람을 지치게 했다.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명의들만이 모여 있다는 대형병원에서의 치료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표적항암제 첨단장비를 동원하여 치료하면 할수록 병원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돈에 구애를 밭지 않았지만 좋다는 것에 발을 들여 놓을수록 몸은 쇠약해져 갔다.

 

포기 할 수 없는 심정을 이용한 병원에서는 온갖 좋다는 약을 투여할 것을 강요했다. 약의 독성과 부작용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환자와 보호자는 의사의 지시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생명연장이란 사탕발림에 실험대상이 되는 것도 모르고 사인을 하고 만다. 면역력이 떨어져 나쁜 세균이 침투해도 물리칠 수가 없다. 결국, 암세포 주변에 나쁜 세균이 몰려들어 통증을 유발한다. 진통제로 이겨내지만 내성이 생겨 듣지 않는다. 고통의 나날은 계속되고 몰핀 주사까지 맞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이상 치료할 수 없으니 가라고 한다. 죽음을 위해서 돈을 바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종합검진만 아니었어도 모르고 지냈을 것을, 좁쌀만 한 암 덩어리를 발견하여 죽는 그날까지 고생만하고 가신 삼촌은 현대의술과 돈이 원흉이다. 수술, 항암제, 방사능이 암 치료에 있어서 실효성이 있는 것인가. 내가 만약 암에 걸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현대의술에 맡길 것인가 아니면 대체요법에의 존할 것인가 고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