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까시의 추억

검정교복 추억

말까시 2014. 2. 19. 15:15

 

 

◇ 검정교복의 추억

 

 

 

 

 

날 파리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좁쌀보다도 작은 이놈은 과일 껍질을 조금만 방치해도 여지없이 나타난다. 공동주택에는 주기적으로 소독을 한다. 주부들의 영원한 적 바퀴벌레는 보이지 않는다. 시골만 가도 떼거리로 몰려드는 파리는 종적을 감춘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타나는 날 파리는 대단한 생명력을 지닌 것 같다. 점점 기온이 올라가면서 해충이 극성을 부릴 날도 머지않았다. 실내에 뿌리는 소독약이 인간에 해가 되지는 않은지 살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졸업시즌이 되면 지나친 뒤풀이로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가 있다. 밀가루를 뿌리는 것은 애교로 봐줄 수 있지만 교복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는 행태는 좋게 봐줄 수가 없다. 너덜너덜 찢어진 교복을 입고 활보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편안한 사람 하나 없을 것이다. 심지어 알몸 얼차려로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도 가끔 언론에 비치기도 한다. 풍습과 전통을 잘 이어가는 것에 누가 무어라 하겠냐마는 지나치게 변질되어 나타나는 현상이 좋을 리가 없다. 소중한 교복을 후배에게 물려주는 아름다운 풍습이 되살아나 훈훈한 졸업식이 되었으면 한다.

 

아득한 옛날 중고등학교 교복은 검정색이었다. 전국학생이 동일한 교복을 입었다. 기성복이 없어 거의 대부분 양복점에서 맞추었다. 맞춤복이라 하지만 삼년을 입어야 하기 때문에 품이 넉넉했다. 바짓가랑이도 접어 올려야 하고 팔소매다 한번은 접어야 했다. 넉넉했던 교복이 삼학년이 되면 폼 나게 변한다. 수많은 세탁과 햇빛에 탈색된 교복은 회색빛으로 한층 더 멋을 더했다. 자전거를 타고 통학을 했기 때문에 바지는 누더기가 다 된다. 헤진 곳을 다시 누비고 또 누비다 보면 엉덩이는 하트모양이 만들어진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그 시절 바지를 두벌 맞출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검정교복에 반드시 검정 모자가 머리에 씌어졌다. 학교정문에는 선도부가 복장검사를 했다. 단추가 떨어졌거나 삐딱한 모자를 쓰고 통과하다 잡히면 몽둥이찜질을 받아야 한다. 한동안 엎드려 뻗히는 벌을 받기도 했다. 동복이나 하복 모두 모자는 빠지지 않았다. 모자를 써야 했던 이유를 모르겠다. 아마도 통제의 수단으로 교복을 입히고 모자를 씌운 것이 아닌가 싶다. 사회나 학교나 규제가 심했다. 박박 머리도 조금만 길면 바리캉으로 밀어버리는 벌을 주었다. 여학생들은 치마의 길이도 통제했다. 단발머리 일색인 여학생의 머리가 귀밑을 조금만 가려도 가위를 들이댔다. 참으로 아득한 옛날옛적일이다.

 

요즈음 아이들 교복은 화려함이 극치를 이룬다. 학교마다 특색 있게 디자인된 교복은 신사복 못지않은 비용으로 가정경제에 막대한 부담을 준다. 블라우스를 비롯하여 카디건 외투까지 갖추려면 삼사십만 원은 족히 들어간다. 유명메이커만을 찾는 아이들은 가정형편은 안중에도 없다. 신발 하나에 십만 원을 능가하는 것을 스스럼없이 집어 든다. 체면이 구겨지면 왕따를 당한다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려면 부모의 허리는 활처럼 휘어진다. 입학철이 다가오면 바짝 관심을 가졌다가 소리 없이 사라지는 교복 값의 고비용 문제는 해답이 없단 말인가. 너나 나나 유명 메이커만을 쫒아 높아만 가는 눈높이를 생각하면 내 어릴 적 입었던 검정교복이 무난하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