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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못 잊을 가마솥 두부와 조청

말까시 2014. 1. 28. 15:45

 

 

◇ 아 못 잊을 가마솥 두부와 조청

 

밤새 비가 내렸다. 길바닥에 물기가 있어 미끄러웠다. 살얼음이 얼은 곳도 있었다. 겨울에 걸맞지 않는 비로 인하여 먼저 번에 내렸던 눈이 사르르 녹았다. 하늘은 무척이나 파랗다. 모처럼 영상의 날씨가 봄날을 연상케 한다. 설 준비로 분주한 주부들에게 포근한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물이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은 시원하기까지 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내리쬐는 태양의 열기에 바람은 냉기를 잃고 훈풍을 만들어 내고 있다.

 

설날 하루 전에 돼지를 잡고 전을 붙인다. 집집마다 솥뚜껑을 엎어 철판을 대용한다. 기름을 두르고 배추를 올려놓으면 뜨거운 열기에 물방울이 튄다. 묽은 밀가루 반죽을 국자로 떠서 배추위에 돌려 붓는다. 서서히 익어가면서 고소한 냄새는 울타리를 넘어 골목을 타고 흐른다. 집집마다 풍기는 고소함은 온 동네를 휘감아 마을 어귀에 까지 진동을 한다. 배추 전을 비롯하여 파전, 가죽나무전, 김치전을 붙여 채반에 올려놓으면 그렇게 보기가 좋았다.

 

엄마 옆에 찰싹 붙어 있는 막내는 전이 익기를 학수고대하며 입맛을 다시고 있다. 마당에서 놀다가 고소한 냄새에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익기가 무섭게 달려든 아이들이 한 조각씩 먹다보면 금방 동이 난다. 눈물을 흘리면서 붙여내는 엄마는 맛있게 먹는 자식들이 귀여운지 손놀림이 빨라진다. 아직 채반에는 한쪽의 전도 보이지 않는다. 붙이는 족족 먹어 치워버리니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명절이 되면 떡을 한다. 설날은 가래떡을 추석에는 송편을 만들었다. 하지만 두부를 만드는 집은 흔하지 않았다. 엄마는 맷돌에 콩을 갈아 가마솥에 넣고 끓인다. 나무주걱으로 눌러 붙지 않게 저어 주어야 한다. 뜨거운 열기에 땀방울이 맺힌 이마를 훔칠 여유도 없다. 어느 정도 익었다 싶으면 장작불에 물을 끼얹어 열기를 식힌다. 자루에 익은 콩물을 붓고 짜낸다. 뽀얀 콩물을 다시 솥에 넣고 미지근하게 데운다. 바가지에 간수를 넣고 콩물을 떠서 부어주기를 반복하면 엉기기 시작한다. 눈송이처럼 엉겨 붙으면 틀에 천을 깔고 엉긴 숨 두부를 붓고 큰 돌을 올려 압착을 한다. 단백질이 농축된 두부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를 간장에 찍어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으면서 느껴지는 고소함은 입 안 가득 행복함이 밀려온다. 각종 첨가물이 잔뜩 들어간 공장두부처럼 부드럽지는 않지만 고소함은 두 배다. 기름에 붙여내는 두부전 또한 별미다.

 

설날 대표적인 음식인 가래떡을 먹기 위해서는 조청이 필요하다. 조청을 만들기 위해서 엄마는 시루에 쌀을 넣고 고두밥을 만들었다. 엿기름을 넣고 버무려 항아리에 넣고 물을 부어 숙성을 시키면 밥알이 흐물흐물 녹아내린다. 엿기름에 녹아내린 물을 가마솥에 넣고 장시간 저어가면서 고아야 한다. 두부 만드는 것보다 시간이 배 이상 걸린다. 걸쭉해지면 항아리에 담아낸다. 종지에 조금씩 떠서 가래떡을 찍어 먹으면 달콤함에 한동안 넋이 나간다.

 

이젠 만들어 먹을 수 없는 엄마표 가마솥 두부와 조청이 명절만 다가오면 생각난다. 먹고는 싶어도 연로하신 엄마에게 만들어 달랄 수 없다. 거동이 불편하여 겨우 밥만 해먹을 정도이니 한다고 해도 말릴 판이다. 팔팔 날랐던 힘은 어디가고 지팡이를 의지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분할만도 하지만 세월을 욕할 수도 없다. 시장에 가면 널려 있는데 직접 만들자고 하면 아내가 펄펄 뛸 것이다. 언젠가는 직접 내가 만들어 차례 상에 올리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