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한음식이 그립다.
◇ 천한음식이 그립다.
써글놈의 먼지는 하늘을 덮고도 남아 온통 세상을 뿌옇게 만들어 놓았다. 안개 낀 날처럼 가시거리가 짧다. 마스크를 착용해도 소용이 없다. 아주 작은 미세먼지는 방진마스크가 아니면 잡을 수가 없다. 그대로 마신 먼지는 기침을 유발한다. 눈도 따갑다. 비라도 내린다면 깨끗하게 청소를 할 수 있을 텐데, 한겨울에 비를 바라는 것은 무리고 바람이라도 세차게 불었으면 좋겠다.
메주를 삶던 날, 구수한 냄새는 마을 어귀까지 퍼져 구미를 당긴다. 메주콩위에 의례히 고구마를 올려 삶는다. 콩이 삶아지면서 익어버린 고구마는 물고구마가 되어 달고 맛있다. 구운 고구마도 맛있지만 메주콩에서 나온 고구마의 맛을 따라 올수가 없다. 김장김치를 꺼내 쭉쭉 찢어 고구마에 감아 먹는 것은 별미 중에 별미이다. 겨울철 간식거리로 각광을 받은 고구마는 웰빙식으로 탈바꿈하여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
겨울이 되면 새들이 집근처로 날아든다. 먹을 것이 귀한 동절기에 마당에는 가을에 탈곡을 하면서 떨어진 벼이삭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그것을 파먹기 위해 떼 지어 날아드는 참새는 잡기만 한다면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볏짚을 엮어서 새 덮치기를 만들었다. 새가 좋아하는 조를 매달아 놓으면 그것을 먹기 위해 참새들이 몰려든다. 조를 쪼아 먹으려는 순간 덮치기가 작동하여 새를 가두어버린다. 고기는 별로 안 되지만 불에 구워먹으면 고소함이 하늘을 찌른다. 어른들이 무척이나 좋아 했다.
김장을 하고 남은 배추는 집을 덮어 보온을 한다. 눈이 오고 찬바람이 불어도 얼지 않는다. 김장김치가 질릴 때 한 포기씩 뽑아다가 겉절이를 하면 아삭한 맛이 일품이다. 김치전도 별미지만 파랗고 억샌 배추 잎도 부침개를 만들어 먹으면 달달하다. 막걸리를 곁들인다면 금상첨화다. 고기를 좋아하는 어른들은 부침개를 즐겨 먹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은 무척이나 좋아 했다. 겨울철 한가할 때 엄마를 졸라 전을 붙이면 눈 깜작 할 사이에 사라진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 부침개는 고구마 못지않은 간식거리로 즐겨먹었다.
무청, 그늘에서 말리면 시래기가 된다. 푸성귀가 없는 겨울에 섬유질이 풍부한 시래기는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존재이다. 엄마는 바싹 마른 무청을 가마솥에 삶아 건져 물을 빼고 된장과 버무려 장독에 담아 놓았다. 겨울 내내 조금씩 꺼내 국을 끓이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파란 배추 잎도 집으로 엮어 말려 놓으면 무청보다 부드럽고 포만감을 주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매일 아침 올라오는 시래깃국은 김치와 함께 사랑을 많이 받았다.
해지고 어두워 저녁을 먹고 놀다보면 배가 고프다. 고구마를 하나 꺼내 깎아 먹어보지만 뭔가 부족하다. 마루 밑에 만들어 놓은 토굴에서 튼실한 무를 꺼내 엄마에게 주면 칼로 어긋 썰어 내놓았다. 목이 마른 겨울밤 한 입 베어 물면 시원물이 쏟아지며 달짝지근하다. 무는 소화제 역할도 했다. 많이 먹으면 트림을 유발하여 불쾌감을 주지만 늦은 밤 출출한 배를 채우는데 손색이 없었다.
먹거리가 풍부해졌다는 겨울밤 냉장고를 열어보아도 먹을 것이 없다. 화장실만 자주 가게 만드는 과일은 별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자와 치킨은 한조각 이상은 먹지 않는다. 건강에 좋지 않다고 줄이라 하지만 그때뿐 탁자에는 늘 화려한 포장지가 나뒹굴고 있다. 틈틈이 먹으라고 떨어질세라 사 나르는 빵조각은 선반에서 마르고 있다. 과자역시 봉지가 뜯긴 채로 거실에서 굴러다닌다. 먹고 마시고 뛰어놀다보면 금방 배가 꺼지는 그 시절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 옛날이여. 칡 캐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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