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으로 나눠진 인왕산
◇ 성곽으로 나눠진 인왕산
입동이 내일모래다. 단풍은 한반도를 가로질러 남쪽구석까지 붉게 물들게 했다. 주말이면 단풍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국립공원마다 몸살을 앓고 있다. 비가 온다고 한다. 수능이 있는 날이면 영하의 날씨로 고생을 했었지만 근례에 들어서는 추위로 떨어야 하는 수고가 사라졌다. 수험생을 둔 부모는 추우나 더우나 걱정이 가시지 않는다. 궂은 날씨만 아니면 시험 보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부디 좋은 성적을 거두길 빌어본다.
도심 속의 작은 산 인왕산에 다녀왔다. 북한산, 관악산, 수락산, 불암산 등 서울근교 산만 줄기차게 다니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주섬주섬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일요일 전철 안은 시내로 나가려는 노인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청량리에서 일부내리고 종로에 이르자 거의 다 내렸다. 노인들이 즐겨 찾는 탑골공원 일대에는 사시사철 노인들이 끊이질 않는다고 하는 것을 보면 종로는 노인들의 천국이 아닌가 싶다.
경복궁역을 빠져나와 사직단을 향해 가는 인도는 무척이나 넓었다. 사직단에서 어디로 갈까 망설이자 아내는 알기나 하고 가는 거냐며 불만을 표시했다. 마침 앞에 풍성한 아줌마 두 분이 배낭을 메고 사직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뒤 따라 갔다. 조금 올라가니 북악스카이웨이로 연결되는 도로가 나왔다. 아스팔트 옆에 나무들은 물들어 보기 좋았다.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눌렀다.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갈림길이 나타났다. 보초를 서고 있는 사복경찰의 안내로 등산로를 찾아 오르고 오르니 성곽이 나타났다.
보수공사한지 오래되지 않은 성곽의 상단은 깔끔했다. 안개가 드리워진 골마다 어렴풋이 단풍이 보였다. 알 수 없는 붉은 열매도 눈앞에 있었다. 산 아래 빌딩들은 안개 속에 파묻혀 윤곽만이 어렴풋이 보일뿐 온통 회색빛이었다. 하늘과 땅의 구별이 없었다. 성곽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해님이 보이기 시작했다. 북악산 아래 청와대, 경복궁, 남산타워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잠시 쉬어야 했다.
시야가 탁 트인 바위에 걸터앉았다. 배낭에서 막걸리를 꺼내 호박전을 안주삼아 한 사발 들이켰다. 국구 사양하는 아내의 입에도 두어 방울 떨어 트려 주었다. 머리를 흔들며 찡그리는 모습이 귀여웠다. 시원한 막걸리는 땀방울을 날려 보냈다. 오장육부까지 전달되도록 지퍼를 열어 젖혔다. 알코올과 산바람에 취해 있는 동안 안개는 겉이고 시내 한복판이 다 보였다. 남산아래 쭉쭉 뻗은 빌딩들은 주상절리를 연상케 했다.
인왕산 정상에는 젊은 처자들이 많았다. 낮은 산이라 그런지 아이들도 많았다. 정상을 찍고 하산 길에 붉게 물든 단풍이 제법 보였다. 성곽은 창의문까지 이어졌다. 성곽의 곳곳에는 망루가 있어 사복경찰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청와대가 가까울수록 철조망은 두꺼웠고 경계 초소가 촘촘했다. 산의 끝자락 가압장물탱크를 개조하여 만들어 놓은 윤동주문학관을 방문했다. 스크린으로 변한 물탱크 벽에 비춰진 시인의 일대기영상은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오는 길은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시내에서 행사가 있었던 것 같다.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광장시장에 들렀다. 빈대떡, 족발, 떡볶이, 김밥 등 먹거리들이 즐비했다. 대구탕으로 메뉴를 정했다. 입소문을 타고 온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루었지만 맛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광장시장의 볼거리를 두루 거친 다음 청계천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뻐근하여 버스에 올라탔다. 잠시 후 아내는 왼쪽 팔을 끌어 않고 머리를 기대더니만 곤히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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