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홍어모둠보쌈

말까시 2013. 10. 25. 14:31

 

 

◇ 홍어모둠보쌈

 

 

 

 

 

빠삭빠삭 풀이 말라가는 소리가 들린다. 짝짓기에 여념이 없는 풀벌레들은 위험한지도 모르고 산책로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다. 더 춥기 전에 알을 낳아 보호막으로 위장해야 이듬해 무사히 부하를 할 수가 있다. 음악에 맞추어 새벽운동을 하는 여인들의 표정이 신나 보이지 않는다. 동작을 반복하다 출렁이는 뱃가죽을 바라보고는 실망 한 듯 찡그린다. 주인과 함께 따라 나온 개들만이 제 세상을 만난 듯 좋아 날뛰고 있다. 하천에서 노숙을 하는 아저씨는 아침부터 막걸리 삼매경에 빠져 있다. 보쌈이 생각난다.

 

숙육, 익힌 고기를 말한다. 우리가 흔히 수육이라 한다. 잘 익은 김치에 싸서 먹으면 정말 꿀맛이다. 막걸리와 곁들이면 소화도 잘되고 포만감에 기분까지 좋아지니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잘 삶아진 돼지고기를 보자기에 싸서 살짝 누른 다음 얇게 썰어 내놓은 것이 보쌈이라고 한다. 수분이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먹으면 부드럽게 잘 넘어간다. 가격이 저렴한 앞다리 살을 푹 삶아 어긋 썰어 보기 좋게 담아내면 보는 것만으로도 입안에 홍수가 난다. 삼겹살로 수육을 만들어 먹기도 하지만 가격이 비싸 쉽게 먹을 수 없다.

 

가을 햇볕이 내리쬐는 마당에서 바자회가 열렸다. 오래된 물건도 있고 구겨진 옷도 진열장에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구경나온 사람들로 마당에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가격이 무척이나 쌌지만 거래는 뜸했다. 마당 한구석에 먹자판이 벌어졌다. 노릇노릇 잘 구워낸 부침개와 함께 막걸리를 드시는 노인들이 퍽이나 즐거워 보였다. 떡볶이 어묵도 있었다. 발걸음이 그곳으로 향했다. 벌건 대낮에 막걸리 두어 잔을 들이켰더니 취기가 올랐다. 안주는 남아 옆 테이블에 기부하고 일터로 돌아왔다.

 

목요일, 목이 터져라 마시는 날이라고 한다. 낮술에 취해 자판은 자꾸만 오타가 났다. 생각은 단풍을 타고 저 멀리 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는 횟수가 잦아졌다. 뚜벅뚜벅 창가로 다가가 물들어가는 가로수를 바라다보았다. 한집 건너 식당이 무수히 많았다. 메뉴의 가짓수가 많은 식당은 눈길에서 멀어진다. 단일메뉴로 승부를 거는 식당을 관심 있게 보아진다. 맛집 사냥에 나선다. 일전에 비오는 날 친구들과 맛있게 먹었던 보쌈집이 생각났다. 야들야들한 수육, 부드러운 족발, 탱글탱글한 홍어사시미를 넓은 접시에 담아 내온 ‘홍어모둠보쌈’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초대 받아 나가는 것은 부담이 덜하다. 하지만 내가 초대하여 자리를 만들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한잔 하려면 적어도 세 명은 되어야 한다. 성원이 안 되면 창피한 일이다. 용기를 내어 카톡을 날렸다. 어라! 반응이 금방 왔다. 술 고픈 친구가 많았나 보다. 신났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퇴근 시간이 빨리 오기만을 학수고대 했지만 태양은 더욱더 빛을 내뿜고 있었다. 어둠아! 어둠아! 빨리 오거라.

 

또다시 먹어보는 ‘홍어모둠보쌈’ 그 맛은 우리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맛집이라 그런지 초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이 꽉 들어찼다. 술이 녹아들어간 사람들은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술이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는 웃음을 만들어 냈다. 머리카락도 취했는지 늘어지는 길이가 더해갔다. 기분 좋게 마신 술은 귀가를 재촉하지 않았다. 매일 같이 이런 기분이면 얼마나 좋을까. 역시 친구와 함께 마시는 술은 달달하다. 거하게 취한 친구들은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겨 치맥과 함께 이야기보따리를 늘어놓느라 밤 깊은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