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까시의 추억

산밤의 추억

말까시 2013. 9. 27. 15:00

 

 

◇ 산밤의 추억

 

 

 

 

햇살의 끝이 날카롭다. 살갗을 파고드는 힘이 여름과는 다르다. 습도가 낮은 가을날 조금만 햇볕에 노출되어도 피부는 벌겋게 물들어 검게 변한다. 구리 빛 얼굴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을 들판에 나가 꽃구경하다보면 저절로 만들어진다. 종아리를 내놓고 달리는 자전거 마니아들은 그을린 정도가 지나쳐 짙은 밤색으로 변했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장딴지 근육은 엄청난 힘을 뿜어낸다. 등산인구가 많다고 하나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건강과 레저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자전거는 집집마다 한두 대는 기본이다. 전국의 하천에 만들어 놓은 자전거 길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득하다.

 

밤송이의 날카로운 가시가 무디어지면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토실한 밤알 세 개가 자리 잡고 있다. 낫을 이용하여 밤알을 끄집어내 호주머니에 넣는다. 즉석에서 껍질을 까 생밤을 먹어도 달고 맛있다. 구워먹으면 고소함이 한층 더해 간식거리로 인기 만점이다. 산밤은 알이 작지만 맛은 더 좋다. 마을 뒤 산에 오르면 밤나무가 무수히 많다. 산 임자가 있지만 일일이 감시를 할 수가 없다. 농사일이 바쁘기 때문이다. 밤이 익어갈 무렵이면 방과 후에 책가방을 던지고 산으로 올랐다.

 

밤나무는 크다. 초등학생이 나무를 오르지 않고는 밤송이를 털 수가 없다. 어렸을 때부터 나무 타는 연습을 밥 먹듯이 한 친구들은 밤나무를 올라 흔들어 밤송이를 땅으로 털어내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흔들어 떨어지지 않는 밤송이는 작대기로 때려 털어내면 된다. 호주머니를 채우는 데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다. 호주머니를 불룩하게 채우고 남는 것은 그 자리에서 까먹었다. 생밤을 먹다 보면 손에 묻은 밤물이 옷에 물들어 얼룩이 지는 경우가 있다. 세탁해도 잘 지지 않는다. 비싼 옷 버렸다고 혼나는 일은 그것이 아니어도 늘 상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았다. 배고픈 시절 무엇이든 먹어 배부르면 행복했다.

 

나무에 올라 있는 친구가 무엇을 보았는지 쏜살같이 내려왔다. “튀어라” 산지기가 나타났던 것이다. 잡히면 큰일 난다. 학교도 다닐 수 없고 모두 변상해야 한다. 봄에 딸기를 몰래 따먹다가 현장에서 잡혀 곤혹을 치른 적이 있다. 있는 힘을 다해 산 아래로 내달렸다. 가시덤불이 몸을 할퀴어도 아프지 않았다. 나무와 나무사이로 내달리는 아이들은 번개처럼 빨랐다. 어른이 도저히 따라 올수가 없다. 순식간에 사라진 아이들을 바라보는 산지기는 고함만 칠뿐 더 이상 추격을 하지 않았다. 초능력을 발휘하여 내달리는 바람에 아까운 밤알이 호주머니에서 빠져 나갔지만 상당한 양은 그대로 있었다.

 

산 아래 아지트에 아이들이 모였다. 호주머니가 두둑했다. 수확의 기쁨을 나누기 직전 한 놈이 펄썩 주저앉았다. 발등을 보니 뾰족한 나무가 박혀 있었다. 피가 보였다. 무서웠다. 정신없이 내달리는 바람에 송곳같이 날카로운 나무가 고무신을 뚫고 발등으로 빠져나온 것도 몰랐던 것이다. 친구는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들의 지혜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손으로 뽑으려 했지만 고통만 더했지 꿈적도 안했다. 병원에 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시절 상처가 나도 쑥을 으깨어 바르면 그만이다. 나중에 알아보니 친구 아버지가 펜치로 나무를 뽑아내고 솜에 알코올을 묻혀 구멍 난 곳에 넣고 위아래로 소독을 하는 것으로 치료는 끝났다고 한다. 지금도 친구의 발등에는 구멍 난 흉터가 그대로 남아있다. 가을만 되면 생각나는 밤 서리, 다시 한 번 해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