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좋았습니까.
◇ 명절 좋았습니까?
가을이 왔다고는 하나 기온은 여름과 다름이 없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입이 비틀어져 제구실을 못한다고 하는데 도심 속 아파트촌에 모기가 득실거린다. 한번 물리면 가렵고 붉은 반점이 이삼일 지나야 사라진다. 뜨거운 태양아래 벼들만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태풍이 오지 않아 과실도 낙과 없이 단내를 풍기고 있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제법 가을찬바람이 불어 온기는 남쪽으로 밀려날 것이다.
명절을 쇠고 나면 말들이 많다. 거의 대부분이 여자들의 입에서 서운했던 일을 왈가왈부 늘어놓는 바람에 분위기가 썰렁해진다. 시댁을 나서기가 무섭게 쏟아지는 말들에서는 서운함을 억지로 만든 경우도 있다. 남자들이 봤을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연설을 늘어놓는 것을 보면 생각주머니가 남자와는 많이도 다른 것 같다. 장황하게 늘어놓는 연설에 졸음을 면해 좋지만 듣기 거북한말에 자르기라도 하면 오히려 누구편이냐며 시비를 건다.
남자들은 형제간에 별 말이 없다. 한자리에 모여도 인사를 나누고는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여자들은 음식을 만들면서도 입은 계속하여 움직인다. 가끔 웃음소리도 나오지만 어느 샌가 심각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이고는 소곤소곤 하는 경우도 있다. 갑자기 조용해져 남정네들이 쳐다보기라도 하면 말을 멈추고 시치미를 뗀다. 분명 흉을 본 것이 틀림없다. 불판이 달아올라 열기가 고조되면 수다는 더욱더 힘을 발휘하여 말이 앞서간다. 좋은 말도 듣다보면 엉키고 꼬아져 변질되기 마련이다. 무수히 많은 말을 하다보면 백에 하나는 못할 말이 나와 심기가 불편해진다. 즐거웠던 명절이 끼니를 더해 갈수록 불만이 쌓이기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남자들이 거들지 않는다고 여자들은 불평불만이 많다. 음식 만드는 일에 남자들이 적극적으로 할 일은 별로 없다. 어설프게 도와준다고 부산을 떨다보면 방해된다고 내몰리기 십상이다. 무거운 것이나 들어주고 칼을 갈아주면 그나마 칭찬을 받는 게 전부다. 시장 보는 것이야 같이 동참하는 것은 오래된 일이다.
고향이 멀고먼 곳에 가려면 거의 대부분 남자들이 운전을 한다. 일고여덟 시간 운전을 하다보면 허리도 아프고 궁둥이에서는 불이난다.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해보지만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고향 가는 길은 고행길이 아닐 수 없다. 교대로 하자는 제의에 고속도로는 무섭다며 극구 사양한다. 긴긴 시간 길바닥에서 허덕이다 시골에 도착하면 녹초가 되어 바로 큰대자로 누울 수밖에 없다. 그 순간 여자들은 긴장의 순간이 시작된다. 가자마자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부담감에 부엌과 장독대를 왔다 갔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의 움직임은 실수투성이다.
오랜만에 만난 여인들은 서열상으로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나름대로 주특기를 찾아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 시기와 질투로 똘똘 뭉친 여인들은 음식을 만드는 것도 손아래동서가 조금이라도 잘하는 눈치가 보이면 칭찬을 할 줄 모르고 깎아내리기 일쑤다. 한방 먹은 여인은 큰대자로 누워 있는 남편에게 다가와 옆구리를 찌르고는 “으앙” 태평성대라며 불만을 토로한다. “여독이 풀리려면 아직 멀었는데 첫날부터 투정을 부리면 도대체 뭘 어쩌란 말인가.” 위로의 말을 듣고자 했던 여인은 남편의 무관심에 앞치마를 벗어던지고는 화장실로 사라진다. 휴지통을 발로차고 눈물을 짜지 않았을까.
명절, 여자들의 불만은 절대 남자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고스톱이나 친다고 언론매체에서 이구동성으로 떠드는 바람에 남자들이 도매금으로 욕을 먹은 것이다. '여자의 적은 여자다.' 삼일이 지났건만 아직도 여독이 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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