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성품은 고칠 수 없는 것인가.
점점 빗방울이 굵어지고 있다. 바람을 먹음은 빗방울은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흩날린다. 나뭇잎을 때리고 가지를 튕겨 쏟아지는 빗방울은 투박한 소리를 내며 부서진다. 여름막바지에 장대비가 쏟아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태풍이 올라온다고 하나 수도권에 미칠 정도로 거대한 태풍이 아니라 했다.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여름 늦깎이 폭우는 내일까지 내린다고 한다. 시원한 바람이 스며들어 좋기는 한데 피해를 줄까 걱정이다.
◇ 타고난 성품은 고칠 수 없는 것인가.
요즈음 딸내미가 구겨진 얼굴을 필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날씨가 더운 탓도 있겠지만 심적으로 고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워낙 까칠해서 말을 붙이기도 겁난다. 마음 내키지 않는 말을 걸기라도 하면 마구 쏘아 붙인다. “부드러운 여자가 대우받는다.”고 고칠 것을 주문하지만 “워낙 태어날 때 타고난 성품이라 고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저러나 용기를 내어 말을 붙여 보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머리스타일이 변해있었다. 거금을 투자하여 긴 머리를 커트하고 약간의 웨이브를 주었는데 마음이 안 든다는 것이다. 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 예민한 시기라 그런지 거울을 볼 때마다 신경질을 내곤 한다. 외출을 하지 않아도 머리를 감고 말리면서 다시 거울을 보고 고대기로 말아보고는 인상 쓰기를 반복한다. "좀 지나면 머리가 길어 괜찮다."고 했지만 좀처럼 마음이 풀리지 않는 것 같다.
아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며 울상을 짓고 있었다. 사무실 금고를 여닫는 과정에서 엄지손가락을 찌어 아파죽겠다고 엄살을 늘어놓는다. 엄지손가락을 보니 시커멓게 멍이 들어 있었다. 잘못하면 손톱이 빠질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병원에 갈일은 아닌 것 같았다. “정신을 딴 데 두고 하니 그렇지” 하고 핀잔을 주었더니만 “남편으로서 그럴 수 있느냐”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것이다. “당분간 밥도 자기가 하고 설거지를 비롯하여 쓰레기 버리는 일까지 도 맡아 하라며” 째려본다. “그렇게 하마” 대답은 했지만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돼지고기 앞다리를 삶아 보쌈을 만들어 저녁을 차렸다. 뽕나무뿌리로 만든 담금주로 분위기를 살리고 상처 난 아내의 마음을 녹여주었다. 아내가 드라마를 보는 사이 설거지를 마쳤다. ‘아내의 말을 너무 잘 듣는 것이 아닌가.’하고 책망하는 사이 우당탕 설거지 하는 소리가 들린다. “접시에 고춧가루도 그대로고 기름기도 말끔하게 닦여지지 않았다”며 세제를 들어부어 설거지를 하는 중이었다. 청소를 즐겨하는 아내, 설거지를 해도 윤기가 빤짝이게 하는 아내,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발휘하느라 열성인 아내는 적당히 하라는 내가 이상하다는 눈치다. 위생개념이 철두철미한 아내는 너무 깔금을 떨어 문제다. 이것 또한 고칠 수 없는 것인가.
깊은 잠에 빠져 자다가 쉬가 마려워 일어나 보니 거실 소파에서 자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다섯 시가 넘었다. 화장실을 들러 볼일을 보고 안방에 들어가 보니 아내 옆에 시커먼 놈이 자고 있었다. ‘언놈이 아내 옆에 버젓이 내 자리를 차지하고 자빠져 자고 있을까’ 눈을 비벼가며 자세히 들여다보니 키가 장대만한 아들놈이었다. ‘이놈이 지방에서 안자고 어찌하여 신성한 안방에서 자고 있을까’ 아내는 인기척도 모르고 꿈나라에 빠져 있었다. 깨울까 망설였지만 포기하고 다시 거실로 나왔다. 잠자고 있는 아들놈 건드려봤자 좋은 소리 못들을 것이고 한 성깔 하는 아내 역시 곤히 자는 것을 깨웠다가는 아침도 못 얻어먹을 판, 가정의 평화를 위해 성인군자가 되기로 했다. 개성이 강한 울 식구들 어떻게 해야 다스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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