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위에 떠 있는 팔봉산
◇ 강물위에 떠 있는 팔봉산
홍천강 기슭에 막바지 피서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울긋불긋한 햇빛가리개와 텐트는 이곳이 피서지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구명조끼를 입고 보트를 타고 수영을 하며 물놀이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깊은 곳으로 모험을 즐기려는 피서객이 있어 관리인은 호각을 부느라 바빴다. 팔봉산을 끼고 굽이쳐 흐르는 홍천강은 여름피서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었다.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 팔봉산은 들어 앉아 있었다. 매표소 입구에는 요상한 물건이 솟구쳐 있어 뭇 여성들의 관심대상이었다. 초입부터 숨이 가쁘고 비 오듯 쏟아지는 땀방울은 눈앞을 가렸다. 급경사로 이루어진 등산로는 많은 체력을 요구했다. 제멋대로 튀어나온 바위에 무릎이 깨져 통증이 밀려왔지만 앞으로 나아가는데 장애가 되지 않았다. 바람은 열풍이 되어 괴롭혔다. 우여곡절 끝에 제1봉에 올라보니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앞으로 넘어야 할 봉우리가 일곱 개나 남아 있다는 생각에 걱정이 앞섰다.
제1봉에서 사방팔방 펼쳐진 풍광을 감상하고 우린 한마음이 되어 발길을 옮겼다. 가는 곳마다 벼랑과 낭떠러지 튀어나온 돌들이 앞길을 막았다. 바위를 돌아 줄을 타고 철다리를 건너 닿는 곳마다 기암괴석은 볼거리를 제공했다. 바위틈바구니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있는 노송은 잔바람에도 흔들렸다. 척박한 곳에서 푸름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서있는 나무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봉우리를 넘어 가는 내내 홍천강은 팔봉산을 휘돌아 무수한 그림을 만들어 냈다. 개미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저곳이 피서지임을 암시했다. 래프팅을 즐기는 사람들의 휘젓는 노는 절지동물의 다리를 연상케 했다. 위에서 보여 지는 홍천강의 물체들은 느리게 움직였다. 우리의 일상도 저렇게 느림의 미학이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했다.
능선의 바람은 시원했다. 홍천강 아래서부터 치고 올라온 바람은 능선을 넘어 다시 반대편 강으로 급강하 했다. 뾰족한 바위에 올라선 사람들은 두 팔을 벌려 바람을 안았다. 시원함이 가슴속 깊이 파고들자 저마다 비명을 질러댔다. 특히 여인들이 질러대는 비명소리는 골바람을 타고 저 멀리 날아가 남성들의 고개를 돌리게 했다. 지친 몸이었지만 반사적으로 여인을 향한 눈길은 한동안 머물러 있었다.
제3봉을 넘어 골짜기에 이르자 해산굴로 가는 길과 4봉으로 우회하는 갈림길이 나타났다. 해산굴을 통과 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새롭게 우회로를 만들었던 것이다. 좁은 통로를 빠져나오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는 여인들은 괴성을 질러대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누구의 도움 없이 홀로 빠져나오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산모의 진통이 시작되어 출산하기까지의 과정을 말해주는 해산굴은 팔봉산하면 떠오르는 상징적인 곳이다.
제8봉을 찍고 하산길이 시작되었다. 초입과 마찬가지로 급경사는 한발 한발 옮길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현기증이 더위와 함께 밀려왔다. 만에 하나 잘못디딘 발이 삐끗이라도 한다면 홍천강으로 굴러 떨어져 고기밥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거북이 거름으로 무사히 하산하여 강물에 풍덩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강물은 뜨거웠다. 유난히 폭염이 심했던 금년더위는 굽이쳐 흐르는 강물을 뜨겁게 달구어 놓았던 것이다. 단풍이 들면, 눈꽃이 피면 다시 한 번 오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