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삶의 애환을 달래주는 한잔의 술

말까시 2013. 7. 23. 16:24

 

 

◇ 삶의 애환을 달래주는 한잔의 술

 

하늘 끝이 새까맣다. 무섭게 내리고 있는 빗방울은 땅을 파 일군다. 우산을 바쳐 들었지만 튕겨지는 물방울은 속살을 적신다. 바짓가랑이로 타고 올라오는 습한 기운은 허벅지와 옷감을 더욱더 밀착시킨다. 직선과 사선이 합쳐져 커져버린 빗방울은 창문을 마구 때린다. 방울방울 맺혀 있는 빗물은 투명한 창을 가렸다. 흐르고 흘러 고인 빗방울은 창틀을 넘어 안으로 스며든다. 어제도 그제도 내렸던 장마는 오늘도 어김없이 마구 퍼붓고 있다.

 

연일 쏟아지는 비덕분에 주당들은 신났다. 퇴근 후 한잔 쭉 들이키는 소주야말로 삶의 애환을 달래주는 기호음식이다. 연탄불에 올려 진 고기 덩어리가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와 빗소리가 어우러져 정겹다. 구수하게 퍼져 나오는 냄새는 구미를 바짝 당긴다. 괜한 젓가락을 빨아대는 주당들은 더디게 익어가는 고기를 자꾸만 뒤집는다. 성질 급한 주당은 익기도 전에 몇 잔을 비우고는 드럼통을 발로 차 놀라게 한다. 노릇노릇 익어가는 주먹고기는 한동안 입안을 행복하게 한다. 씁쓸했던 알코올 맛을 중화하여 부드럽게 넘어가는 목구멍에서는 경쾌한 소리를 내보낸다. 처음만나 우울했던 기분은 사라지고 작은 소리는 커지고 동작은 빨라진다. 여기저기 잔 부딪치는 소리는 트라이앵글소리만큼이나 아름답다. 시간이 더해질수록 주막은 술 향기와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다정함으로 가득 찬다. 아랑곳없이 대차게 내리는 빗방울은 어둠과 함께 술맛을 더해준다.

 

우리나라 소주가 30도로 시작하여 25도를 찍고 점점 내려가 20도를 밑돌고 있다. 가장 오랫동안 서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소주는 25도가 아닌가 싶다. 지금은 돌려 따는 병마개였지만 예전에는 모두다 프레스로 눌러 만든 병마개로 거의 이빨을 사용했다. 나무젓가락으로 열어 뽐내는 친구도 있었고 순간적인 펑 소리를 내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25도짜리 희석식 소주 한 병을 혼자 마시기는 벅차다. 금방 취기가 올라와 화장실을 간 친구가 돌아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 길바닥에 엎어져 주무시는 사람들도 많았다. 갈지자로 걷는 사람들은 부지기 수였다. 괜한 연탄재를 발로 차고는 영웅이 된 것처럼 즐거워하기도 했다. 자가용이 많지 않던 시절에 보닛에 올라가 굴러대는 사람도 있었다. 건물마다 화장실은 자물쇠로 채워져 소변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공중화장실 찾기는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렵다. 급한 나머지 후미진 곳 아무데나 실례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자들도 별반 다름이 없었다. 그렇게 소주는 서민들의 희로애락에 빠질 수 없는 감초 같은 것으로 금방 취하는 바람에 폭력을 낳았고 가족에게 고통을 주었다.

 

30대 초반 술에 취해 지갑을 두 번이나 도단당해 곤혹을 치렀다. 친구결혼식 전날 함을 팔고서 마신 담금 주에 뿅 가서 잠자리를 마다하고 팬티만 입고 헤맨 적이 있다. 2호선 전철을 뱅글뱅글 돌다가 지갑을 도난당하고 무일푼으로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하여 마누라에게 혼줄 난적도 있다. 술을 입에 대면 취하지 않고 집에 가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았다. 집집마다 술로 인하여 사느니 마느니 다툼이 많았다. 폭력을 행사하여 우당탕 살림이 부서지는 소리가 이웃에 들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주류회사의 상술인지 술의 폐해를 줄이기 위함인지 몰라도 20도 아래로 낮춘 소주가 시장을 지배하는 바람에 비틀거리는 사람들이 줄었다. 길바닥에 주무시는 사람들도 눈에 뛰지 않는다. 그렇게 즐겨마시던 소주, 건강이 좋지 않아 술좌석을 줄이고 반주하는 버릇을 없앴다. 현미를 주식으로 야채, 과일 등으로 식이요법을 한 결과 배변이 원활하고 소화흡수가 잘 되어 몸이 훨씬 가벼워 졌다. 수십 년 마신 술이 하루아침에 내 곁을 떠날 순 없는 노릇, 특히 오늘 같이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에는 술이란 단어가 하루 종일 맴돈다. 참아야 한다. 건강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