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까시의 추억

매화꽃 필무렵

말까시 2013. 3. 26. 16:06

 

 

◇ 매화 꽃 필 무렵

 

 

 

 

 

누런 갈대 숲 사이로 새싹이 보인다. 저만치 보니 누군가 불을 질러 검게 타버렸다. 태워 거름이 되면 잘 자란다는 단편적 지식으로 생태계를 망쳐 버렸다. 날개를 퍼덕이며 물질하는 오리의 머리는 장시간 물속에 잠겨있다. 수온이 올라가면서 먹을 것이 풍부해진 것 같다. 양지 바른 뚝방에 쑥이 보인다. 수건을 둘러쓴 할머니가 열심히 뜯어 검은 봉지에 담고 있다. 도심하천 제방에 솜털처럼 올라온 새싹들, 왠지 먹을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개구리가 나왔다. 웅덩이에 알을 새카맣게 까놓았다. 물결 따라 움직이는 개구리 알은 다스한 기운에 부하하여 올챙이가 된다. 겨울 내내 물에 잠겨 있는 논에는 미꾸라지를 비롯하여 우렁이, 물방개가 활개를 친다. 논바닥 군데군데 두엄이 있는 곳에는 주먹만 한 우렁이가 수두룩하다. 장화를 신고 들어가 손으로 주어 담으면 그만이다. 된장을 풀어 한소끔 끓여 젓가락으로 빼먹는 그 맛은 쫄깃하면서 고소함이 입안 가득하다. 쏜살같이 달아나는 물방개도 잡아 구워먹으면 고소함이 번데기 못지않다.

 

봄이 점점 무르익어가고 있다. 봄의 상징, 매화, 개나리, 진달래, 벚나무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남쪽에서는 이미 꽃이 만개하여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누렁이는 논을 갈아엎느라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송아지는 누렁이 옆을 졸졸 따라다니며 방해를 한다. 두엄을 잔득 싫고 언덕을 올라가는 경운기는 힘에 부친 듯 제자리걸음을 한다. 바퀴는 땅을 깊게 파 일구어 놓았다. 좌우로 흔들어 앞으로 나가려 해보지만 점점 빠져들고 만다. 농부의 입에서는 육두문자가 연발한다.

 

빨래터에 아낙들의 손놀림이 빠르다. 힘차게 내리치는 방망이 소리는 건너편 동내까지 들린다. 내리치는 소리가 서방님 옷 다르고 시어머님 옷 다른 것이 무슨 조화일까. 두건사이로 내려온 머리를 연신 올려가며 박박 문지르는 아낙의 콧잔등에 땀방울이 맺혔다. 봄 햇살에 빛나는 땀방울은 진주처럼 영롱하다. 겨우내 찌들었던 옷가지들을 광주리에 이고 나와 작정한 듯 아낙들의 궁둥이가 들썩인다. 빨래가 거듭될수록 방망이소리는 하나가 두 개가 되고 모여 여럿 되어 정겹게 울려 퍼진다. 비누 거품은 도랑을 가득 메우고 있다.

 

장닭들이 싸움을 하느라 날개를 곤두세우고 달려든다. 뾰족한 부리에 물리어 찢겨진 벼슬에 선혈이 낭자하다. 암탉을 차지하기 위하여 싸우고 있는 두 마리의 수탉은 꽤나 긴 시간 먼지를 일으키며 싸우고 있다. 보다 못해 물세례를 퍼부어 버린다. 물벼락을 맞은 후 평온이 찾아왔나 싶었는데 싸움은 다시 시작된다. 수탉한마리가 꽁무니를 보이며 달아난다. 암탉에 올라탄 수탉은 머리를 쪼아대는 것으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골목길에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요란하다. 농사준비로 농부들의 발걸음도 빠르기가 번개다. 발정 난 암캐를 찾아 모여들은 숫캐들은 굳게 닫힌 대문 앞에서 안절부절 못한다. 나물 캐는 처자들의 수다소리가 밭고랑을 타고 넘어 사내놈의 가슴팍을 파고든다. 갈쿠리를 내팽개치고 처자들의 궁둥이로 몰려든시선은 움직임이 없다. 바람타고 스미는 처녀들의 숨소리에 애가 탄 머슴애들은 목이 타는지 목덜미가 꿈틀거린다. 매화꽃 필 무렵 남몰래 찾아온 봄은 무수한 생명체에 생기를 불어 넣어 용솟음치게 한다. 쿵쾅!, 쿵쾅!, 쿵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