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돈을 갈취해가는 봄처녀

말까시 2013. 3. 21. 15:16

 

 

◇ 돈을 갈취해가는 봄처녀

 

공기가 얼었다. 멋모르고 올라왔던 새싹들이 차가워진 공기에 바싹 오그라들었다. 삼월중순을 넘어 사월로 접어들고 있는 시기에 영하의 날씨가 썩 어울리지 않는다. 천변 산책로에 새벽 운동하는 사람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중무장하고 재활훈련을 하는 중풍환자의 변함없는 모습은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설악산 진입로에 눈꽃이 피었다고 한다. 그냥 떠나기가 그리도 억울하단 말인가. 파릇파릇 올라오는 새싹에 냉침을 놓는 횡포는 매년 변하지 않는 것을 보면 자연의 이치는 오묘할 따름이다.

 

봄이 오면서 아내가 돈타령을 늘어놓는다. 아이들 등록금, 책값, 학용품 등 돈 들어갈 곳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며 호시탐탐 주머니를 털려한다. 월급 통장에 있는 돈 다 갔다 쓰면서 무엇을 더 바라는 것이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 놈의 회사는 보너스도 없는지 매달 액수가 별반 차이가 없다며 투덜거린다. 수당, 성과급 그런 거 없냐고 따져드는 아내가 안쓰럽다. 몇 푼 되지도 않는 수당, 용돈도 모자란다고 반문하며 손을 벌리지 않는 것만으로 다행인줄 알라고 일침을 가했다.

 

올해 대학에 들어간 딸내미에 들어가는 돈이 장난이 아니다. 연초부터 머리염색에 파마한다며 거금을 쓰고는 이제 옷을 사달라고 졸라댄다. 반응이 없는 내 모습을 간파했는지 엄마를 붙들고 늘어진다. 마음약한 아내는 딸내미 손에 이끌리어 쇼핑 길에 나선다. 무슨 멋이 들었는지 안경을 집어 던지고 콘택트렌즈를 끼고 다닌다. 좀 불편하다며 라식수술을 해달라고 넌지시 던진다. 성장기에는 수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단박에 거절했다. “친구들도 많이 했는데” 중얼중얼 실망한 듯 얼굴을 찡그리며 사라진다.

 

며칠 전 퇴근하여 출입문을 여는 순간 아들놈이 생긋 웃으며 종이를 들이민다. 아빠에게 편지를 썼다고 하면서 안방에 들어가 조용히 읽어보라 한다. 이제껏 편지 한통 써본 일이 없던 아들놈이 웬 편지란 말인가. 옷도 벗지 않고 침대에 걸터앉아 읽어내려 갔다. 나름대로 논리정연하게 이유를 달아가며 제품의 특성과 멋과 기능을 상세히 기술하고는 갖고 싶다는 내용으로 끝맺음을 했다. ‘아이폰’을 사달라는 내용이었다. 성의가 괘씸하여 흔쾌히 승낙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내를 꼬드겨 바로 구매버튼을 눌렀다.

 

일찍 귀가하여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아내가 들어오면서 자랑을 늘어놓는다. 봄이 와서 기분전환도 할겸 빨간색 외투를 샀다며 물어본다. 색감이 너무 강렬하여 싫다고 했다. 사실 보기는 좋았다. “우리엄마 멋져 부려” 하면서 아들놈은 카메라를 들이대며 셔터를 눌러댔다. 가족카페에 바로 올린다고 아부성 발언을 연발한다. 거울 앞에 선 아내는 옆과 뒤를 돌려보며 까치발을 하고는 예쁘지 않으면 무른다면서 다시보라 강요한다. 마지못해 굿~!!!하고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렸다.

 

다들 돈을 쓰려고 날린데 나라고 가만있을쏘냐. 감색 봄 바지를 하나 장만했다. 여름에 입고 다녀도 무난할 것 같았다. 가방도 하나 샀다. 출퇴근 시 간단한 서류와 책을 넣을 수 있는 갈색톤 쇠가죽 가방이다. 어깨에 걸치고 출근하는 모습을 본 아내는 새로운 멋이 난다며 추켜세운다. 에이! 기분이다. 지갑을 꺼내 5만원을 주었다. 삼월 한 달 사이 우리가족은 수입에 비해 지출이 더 많았다. 돈 맛을 알아버린 우리집식구들, 고삐 풀리기 직전이다. 단단히 단속하지 않으면 거달라게 생겼다. 봄은 돈을 갈취하는 마력을 지녔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