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증후군 전조증상
◇ 명절증후군 전조증상
“설 명절에 시골에 갈 거야” 아내는 심각한 표정으로 물어본다. 시골에 어머님이 계시는데 당연히 가야지 새삼스럽게 뭘 물어보냐고 신경질을 부렸다. 기분이 상했는지 설거지 하는 내내 괴팍한 소음을 낸다. 특별히 과로를 한 것도 아닌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머리가 아프다면서 이불속에서 빠져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설도 쇠기도 전에 명절중후군의 전조증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어머님께서 역귀성하여 편안하게 명절을 보낼 수 있었다. 중풍으로 쓰러진 후 거동이 불편하여 가까운 거리도 나들이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시골에 홀로 있는 어머님을 찾아뵙는 것은 자식 된 도리로서 당연지사, 어떠한 핑계도 정당화 될 수 없다. 연휴가 짧아서 시골에 다녀올 생각을 하니 엄두가 나지 않는 것 같다.
설 명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명절 준비를 위하여 벌써부터 야단들이다. 택배기사도 바쁘고 시장상인들도 물건을 쟁이느라 정신이 없다. 이것저것 챙겨야 하는 대한민국 며느리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살 것은 많은데 유례없는 불황으로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하다. 장사가 안 된다고 울상인 재래시장 상인들 못지않게 불평불만이 많은 우리 내 며느리들의 한숨소리가 골목마다 가득하다.
고향 가는 길이 고행길이라 한다. 대여섯 시간 차안에 갇혀 있다 보면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짓눌리어 통증이 밀려온다. 짜증 섞인 말들이 터져 나온다. 전방 주시하느라 아픈 눈을 찡그리고 운전하는 사람은 아랑곳 하지 않고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하면 얄미워 죽겠다. 잠시 바꾸어 운전하자는 제의에 빨리 달리는 고속도로는 무서워 못한다고 단박에 거절하는 아내가 여간 밉상이 아니다. 아이들도 쿨쿨 잠에 빠져 단잠을 자고 있는 것을 보면 좋은 그림은 아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보면 오른쪽 발목이 지끈둥 하니 아프다. 막히던 길이 뚫리어 달리려고 하면 급하다 하면서 휴게소를 찾는다. 운전자만 죽을 맛이다.
시골에 도착하면 운전자는 녹초가 되어 나가떨어진다. 좀 쉬려하면 이것저것 갖다달라고 주문을 한다. 익숙하지 않은 시골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려면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고추장과 간장을 뜨기 위해서는 뒤뜰에 있는 장독대를 가야만 한다. 마늘과 시래기는 사랑채 높이 매달려 있다. 남정네들이 내려주지 않으면 손에 넣기 힘들다. 장기간 갈지 않고 쓰인 부엌칼은 무디어져 갈아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절단할 수가 없다. 무수히 쏟아내는 아내의 주문에 쉬지도 못하고 뒷바라지 하다보면 맥없이 주저앉고 만다.
여자들은 그런다. “명절이 되면 남자들은 술이나 먹고 화토놀이에 살판났다고…….” 아니올시다. 여자들 못지않게 남자들도 나름대로 고통이 심하다. 단지 음식 만드는데 주도적으로 하지 않아서 그렇지 식재료를 조달하는 것은 남자들이다. 시골에서는 시장에서 사는 것보다 곡간에 쌓아놓은 먹거리들로 음식을 장만하는 것이 더 많다. 집안 여기저기 보관되어 있는 것들을 음식을 할 수 있도록 세척하고 다듬고 날라주고 하는 것들은 남자들의 몫이다. 기름에 붙이고 간장을 치어 간을 맞추고 하는 것이 음식의 다가 아니다.
한두 번의 다툼 없이 우리의 고유의 명절을 쇠기는 쉽지가 않다. 많고 적음을 떠나서 불평불만은 어느 곳이던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시댁이란 선입견을 버리고 내 집처럼 생각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한다면 더 없이 좋은 전통이다. 핵가족 시대에 명절이 없다면 가족, 친지,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그렇게 많지가 않다. 언제부턴가 한국의 여성들의 아우성에 동조한 언론 매체들의 왜곡된 보도로 남자들을 먹고 노는 베짱이로 만들었다. 여성들이 주방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분명 명절은 남자나 여자나 힘든 것은 매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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