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속에 화려 했던 추석
◇ 빈곤 속에 화려했던 추석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 왔다. 여름 내내 끈적였던 날씨도 사라지고 높아진 하늘은 보란 듯이 청명하다. 가을바람은 구석구석 파고들어 시원함을 전해주고 모가지가 비틀어진 모기는 자취를 감추었다. 무성하게 자라 푸름을 뽐내던 천변 풀잎도 수분을 잃어 누렇게 말라가고 있다. 싹이 나고 꽃이 터져 맺은 열매는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가을은 추석을 정점으로 곳간에 오곡백과를 채워 풍성함을 안겨주고 소리 없이 떠날 것이다.
고향에 가니 마니 옥신각신 하다보면 도시의 골목은 시끄럽다. 명절이 다가오면 의례히 벌어지는 진풍경이다. 살 것도 많고 준비할 것도 많은데 주머니사정은 여의치 않다. 작아진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뱉어낸 한숨은 푸념 아닌 푸념을 양산하고 만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시장에 나가 보면 기웃거리는 횟수만 많았지 섣불리 집어 들지 못한다. 검은 비닐봉지 몇 개 들지 않았는데 지갑은 벌써 텅 비었다. 아직도 살 것이 많은데 발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고향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들은 어디론가 떠나자고 한다. 힘든 여정도 모른 채 보채는 아이들이 야속한지 아내는 절대불가를 외친다. 그동안 어머니께서 역귀성을 하여 고향 가는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자주 가고 싶지만 비용도 만만찮고 일방적으로 주장하기에는 시대가 많이 변했다. 거역하면 가족 간에도 왕따 당하기 십상이다. 나이 드신 노모는 겨우 삼시세끼를 해결 할 수 있을 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이번 추석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다녀올 생각이다.
무수히 많은 별과 휘영청 밝은 달을 보며 두 손 모아 소망을 빌어보던 꿈 많은 어린 시절의 명절은 조금은 부족했지만 너나없이 희망에 찬 풍성한 날이었다. 설 명절 이후 새 옷을 입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며 기름진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보기 드문 날이기도 하다. 헤어졌던 가족친지를 볼 수 있고 다정한 친구들도 만나 볼 수 있는 날이 또한 명절이다. 추석날 저녁은 벌집 쑤셔 놓은 것처럼 온 동네가 시끌벅적 하다. 일직이 도시로 나간 형 누나들은 화려한 옷차림에 부러움을 샀다. 얼굴이 백옥처럼 하얀 누나들은 사투리는 온데간데없고 서울사람이 다되어 꿈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추석전날 전을 붙이는 고소함은 온 동네를 감싸 안았다. 모처럼 굴뚝에서는 하얀 연기가 하늘 높이 날아올라 춤을 추고 있고, 우물가에서는 돼지를 잡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생간을 싹둑싹둑 썰어 생식을 했다. 축구공이 귀하던 그때, 돼지의 방광은 축구공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화려한 옷차림으로 일가친척이 하나둘 마을 어귀로 들어올 때마다 꼬마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입을 벌리곤 했다. 밤이 되면 새 옷을 몰래 꺼내 내일의 모습을 그려보며 즐거움을 감추곤 했다. 내일이 빨리 오기를 바라며 참을 청하지만 말똥말똥한 눈은 감기어지지 않았다.
모시적삼에 갓을 쓰고 근엄하게 차례를 진두지휘 하는 할아버지의 손동작은 예술 그 자체였다. 할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서열대로 줄을 선 아버지 형제 그 뒤로 사촌형제들이 일제히 절을 하는 모습은 일사불란했다. 차례가 끝나고 나면 음식을 드시면서 그동안의 안녕을 묻고 집안대소사가 결정되기도 했다. 성묘를 마치고 나면 행복감이 밀려오고 가슴이 뿌듯했다. 이렇게 가족을 모이게 만드는 명절이야 말로 계속하여 이어져야 할 소중한 전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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