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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꽉찬 냉장고

말까시 2012. 9. 20. 17:58

 

 

 

냉장고 내가 관리 할까

 

주방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냉장고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별로 관심이 없다. 단지 시원한 물을 먹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고 닫을 뿐이다. 시원한 맥주라도 있으면 눈이 번쩍 띄어 안주를 찾느라 냉장고 안을 들쑤셔 놓는다. 목이 타서 갈증이 극에 달했을 때 시원함을 안겨주는 냉장고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물건이다. 일 년 삼백육십오일 쉬지 않고 돌아가는 냉장고는 관리를 게을리 하면 비수가 되어 날아온다.

 

나는 가끔 김치도 담고 반찬도 만든다. 식재료가 있는 냉장고는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다. 특히 찌개를 끓이기 위해서는 냉장고의 문을 열고 양념을 찾기 위해 샅샅이 뒤진다. 순간 울화통이 치밀어 올라올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비닐 랩으로 쌓여 있는 반찬통이 수없이 많다. 먹을 만치만 꺼내 담아놓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여기저기 생각 없이 담아내다 보니 같은 반찬이 두세 개씩 쌓여 있다. 언제 만들어 놓은 것인지 모르는 반찬이 깊숙이 박혀 곰팡이가 핀 것도 있다. 기절초풍할 일이다.

 

냉장실 아래 냉동실을 들여다보자. 설에 가져온 떡국 떡이 꽁꽁 얼어 달라붙어 있다. 그 옆에 팥고물을 뒤집어쓰고 있는 시루떡이 겨울잠을 자고 있고, 언제 가져왔는지 기억조차 없는 달래는 하얗게 성애가 끼여 덜덜 떨고 있다. 풋고추, 먹다 남은 버섯, 국거리용 소고기, 조기새끼 등등 신선할 때 바로 먹어야 할 음식들이 냉동실을 메우고 있다. 냉동한지 오래되면 싱싱함이 사라져 음식 맛을 제대로 낼 수가 없다. 그 안에 잔뜩 쌓여 있는 음식에 냉기를 유지 하려면 많은 전력을 소모해야 한다. 이 얼마나 낭비인가.

 

“이봐! 도대체 냉장고 관리를 하는 거야 마는 거야”

 

막 퇴근하여 들어오는 아내의 면전에 대고 마구 쏘아 붙였다. 더워 못살겠다는 표정으로 신발을 벗고 다가오더니만 점잖게 한마디 한다.

 

“이봐요. 신경 끄세요. 내 영역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간섭마세요.”

 

한마디 하고는 입을 씰룩거리며 안방으로 들어간다. 간땡이가 부었는지 요즈음 달려드는 기세가 장난이 아니다.

 

아내는 설거지를 할 때면 세제를 잔뜩 묻혀 닦고 닦아 빛이 반짝 나게 한다. 수시로 진공청소기를 돌려 먼지가 앉아 있을 틈을 주지 않는다. 화장실에도 락스를 뿌려 곰팡이 하나 없이 눈부시도록 하얀 함을 유지한다. 숟가락과 젓가락도 반드시 티슈를 깔고 놓는다. 이렇게 위생개념이 투철한 안방마님께서 냉장고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환경보호를 위해 세제를 조금만 쓰라 해도 요지부동이다. 진공청소기를 돌릴 때는 아무도 없는 시간을 택해 하라 해도 안하무인이다. 타고난 성품은 아무리 갈고 닦아도 고칠 수 없다고 하는데 정말 맞는 것 같다.

 

김치냉장고가 나오면서 그 안에 가득 넣어 보관한다. 전기 소모량이 엄청나다. 깊은 맛을 내는 묵은지도 필요하겠지만 그때그때 조금씩 담아 먹는 것이 계절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가 있다. 신혼 때 장만한 아주 자그마한 김치냉장고를 항공모함처럼 큰 것으로 바꾸자고 하지만 절대 반대다. 그 안에 잔뜩 쌓아 놓고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전기만 갉아 먹는 대형 냉장고 필요 없다. 관리하지 않으면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송두리째 앗아 갈지도 모른다. 냉장고 내가 관리할까. 자기영역이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