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술독에 빠진 2박 3일

말까시 2012. 9. 17. 10:29

 

 

술독에 빠진 2박 3일

 

 

 

 

회색 빛 하늘이 짙어지더니만 결국 비를 뿌려대고 있다. 바퀴가 밟고 지나갈 때마다 물을 가르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가로수는 흠뻑 젖어 흔들린다. 진녹색 나뭇잎들은 구슬처럼 커져버린 물방울에 꼭지가 휠 정도로 출렁인다. 굵은 빗방울 공격에 소리 만들어 따갑고 우산위에 만들어진 물보라가 사방으로 흩어져 시원스럽다. 정거장에는 우산 키고 내리고 접고 타는 사람들로 혼란스럽다. 버스가 멈출 때마다 우산 속에서 나타난 소녀들은 펄럭이는 머릿결을 감아쥐고 재빠르게 올라탄다. 대지를 촉촉이 적시고 있는 가을비는 살같이 예민한 사람들의 옷깃을 세우고 말아 올라간 소매를 끌어 내렸다.

 

행복한 금요일이라 했다. 아무 계획이 없어도 주말의 전날 금요일은 아픈 환자라 해도 웃음을 만들어 낸다. 이렇게 좋은 날 술 약속이라도 있다면 어깨에 날개를 단거와 다름이 없다. 신들린 사람처럼 보폭이 커지고 흔들리는 손은 가슴까지 차고 올라간다. 툭 치어 어깨가 걸리어도 살짝 미소로 답례를 하고 나면 화는 일순간에 사라진다. 마음은 벌써 회식장소에 도달하여 맛깔스런 음식을 더듬고 있다. 길고 긴 이놈의 차는 오늘따라 왜 이리 자주 스는지 몇 개씩 건너뛰어도 될 것인데 정거장마다 멈추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짧은 인사도 거추장스럽다. 자리에 앉자마자 술잔은 무수히 입을 향하여 오르락내리락 반복을 했다. 천연암반수로 만들어진 시원한 술 한 모금에 붉게 물든 얼굴은 쏟아지는 빛을 받아 가을 단풍이 되어 다가왔다. 더해질수록 익어가는 술 향기는 홀 안을 감돌아 주당들의 깊은 곳을 파고들었다. 차분했던 시작은 어느새 언성이 커지고 자리를 이동하여 정을 나누었다. 잔과 잔이 부딪칠 때마다 대화는 무르익어 서먹한 분위기를 깡그리 몰아냈다.

 

자하궁전은 별천지였다. 아주 작은 불빛아래 움직이는 물체는 갈대가 되어 휘어졌다가 곧바로 서고 다시 넘어져 일어섰다. 감미로운 음악 속에 완숙미가 넘쳐나는 사랑방님들의 스텝바이 스텝은 천국을 밟아 올라가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화려했다. 좁은 공간에서 나눔은 더 없이 좋았고 음악소리에 가려 들리지는 않았지만 미소를 머금고 있는 모습은 망막에 정확하게 비추어졌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질서정연하고 일산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 무엇이라도 만들지 못할 것이 없을 것 같았다.

 

부스스 눈을 떴다. 아침이었다. 머리가 띵했다. 상당히 많은 양의 알코올이 분해되지 않고 마구 공격을 하고 있었다. 연거푸 물만 마시고 계속하여 시체놀이를 했다. 비몽사몽 오전 내내 침대위에서 사투를 벌여야 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몸은 천근만근 지쳐 있었다. 밖에는 해가 쨍쨍 아직은 태풍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것 같았다. 라면 하나를 후다닥 끓여먹고 샤워 하고 스킨 뿌려 단장하고 긴 차에 몸을 실었다. 혜화동 대학로에는 젊은이들로 넘쳐 났다. 밴드소리 우렁차고 긴 머리 소녀들이 그렇게 많았다. ‘닥치고 청춘’이란 연극을 친구의 추천으로 보는 기회를 얻었다. 어둠속에서 진행되는 연극은 영화 ‘완득이’ 내용과 흡사했다. 오랜만에 문화생활을 하고 나니 마음이 뿌듯했다. 뒤풀이가 문제였다. 저녁만 먹고 가자던 친구들은 고깃덩어리를 보더니만 술을 들이붓고 말았다. 4차까지 이어진 술판에 일요일 내내 초죽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