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단비가 내리던 날

말까시 2012. 7. 18. 15:46

 

 

◇ 단비가 내리던 날

 

해가 쨍하고 나왔다가 순식간에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보인 하늘은 가을하늘처럼 높고 파랬다. 태풍 카눈이 온다고 여기저기 대비하라 난리가 났다. 거대한 구름이 뭉쳐 회오리치며 올라오는 태풍이 장마전선과 합류하여 폭우가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밤이 되면 본격적으로 쏟아질 것인데 어떻게 대비를 해야 할지 무엇을 먼저 손대야 할지 가늠이 서지 않는다. 적당히 내려 촉촉이 적셔주기만을 바랄뿐이다.

 

비가 내리는 중랑천둔치에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산을 들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가끔 보일 뿐이다. 불곡산에서부터 시작된 빗물은 양주시를 거치고 의정부시를 지나 서울로 진입했을 때 황토 빛 흙탕물로 변해 매섭게 내려갔다. 교각을 부딪쳐 부서진 물살은 커다란 물보라를 일으켜 하얗게 사라졌다. 수심을 재는 막대기 끝에 비를 흠뻑 맞은 검은 새는 몸을 바짝 오그리고 조는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용감한 사나이 하나가 폭우가 쏟아지는 자전거 길을 달리고 있었다. 뒷바퀴에서 튀어 올라온 빗물은 등을 치고 머리위로 치솟았다. 아랑곳하지 않았다. 작정하고 나선 길 방수복 상의에 헬멧으로 중무장 했기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홀로 달리는 길은 장애물이 없어 탄탄대로나 다름이 없었다. 물구덩이를 지날 때면 물이 두 갈래로 갈라져 퍼지는 멋진 모습은 비오는 날 아니면 볼 수 없는 명장면이다. 길게 뻗어 있는 자전거 길은 물위를 달리는 기분이었다. 사나이는 신이 난 듯 페달을 힘차게 밟아 속도를 냈다.

 

의정부를 지나 송추로 가는 국도로 접어들자 자전거 도로가 없었다. 갓길을 따라 달리는 길은 무척이나 힘들어 가다서기를 반복했다. 무섭게 달려오는 덤프트럭이 튀긴 흙탕물이 얼굴로 들이쳐 순간적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비는 계속하여 굵어졌다. 도로에도 빗물이 흐르고 돌들이 돌출해 있었다. 살짝 겁이 났지만 사나이는 아랑곳 하지 않고 인도와 차도를 넘나들며 잘도 달렸다. 오르고 내리막이 반복되는 송추 가는 길 양옆 계곡에는 물 폭탄이 쏟아져 내렸다. 빗줄기가 약해지며 들어난 도로는 여기저기 움푹 파여 있었다. 송추 초입에 다다르자 비는 멈추었다.

 

도봉산과 사패산에서부터 시작된 빗물은 커다란 송추계곡을 가득 채웠다. 작년가을에 떨어졌던 낙엽들이 물길 따라 무수히 내려갔다. 농경지가 없어서 그런지 흐르는 물은 맑았다. 계속된 가뭄 끝에 내린 빗물은 바싹 말라버린 송추계곡을 흠뻑 적시고도 남아 양쪽 둑방을 차고 올라 왔다. 계곡 양옆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식당에는 막걸리 파티를 즐기는 산님들로 가득했다. 가끔 터져 나오는 탄성은 물살만큼이나 요란했다.

 

숲이 우거진 계곡 아래 발을 당구고 망중한을 즐겼다. 하늘은 구름이 흘러가고 숲은 더욱더 푸르러 선명했다. 펑 하고 터지는 술병의 주둥이에서는 시원한 맥주가 잔으로 쏟아져 나왔다. 한숨에 들이키는 사나이는 시원하고 톡 쏘는 청량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옆 테이블 울긋불긋 산님들은 막걸리를 마시었는지 길고 긴 트림을 하고는 입을 훔쳤다. 이미 술이 들어가 취한 또 다른 일행은 벌렁 나자빠져 낮잠을 즐겼다. 계곡의 물소리와 산에서 불어오는 상큼한 바람은 어둠이 내린 밤에도 산님들을 붙잡아 놓고 술고문을 이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