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애간장을 태운 아날로그 TV

말까시 2012. 4. 20. 17:43

 

 

◇ 애간장을 태운 아날로그 TV

 

꽃비가 내리는 봄날, 아! 나른하다. 울타리에 피어오른 벚꽃과 하얀 목련이 작은 바람에도 우수수 떨어져 눈앞에 다가온다. 가을에 노란 은행잎이 흩날리어 삭막한 도시의 환경을 아름답게 수놓았는데 봄꽃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연녹색으로 튀어나와 자라고 있는 새싹들도 제법 푸른색으로 짙어가고 있다. 치마를 뒤집어 날릴 것처럼 매섭게 불었던 폭풍도 잔잔하게 수그러들었다.

 

봄꽃축제를 한다고 전국에서 야단법석이다. 화면에 나타난 그림들은 화려한 꽃잎 속에 빠져 있는 젊음의 표상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카메라 렌즈도 젊고 화려한 것을 좋아 하는 것 같다. “꽃구경 갑시다.” 이곳저곳 만개한 꽃을 보고자 마음은 벌써 십리 밖을 달리고 있다. 주말 비가 온다고 한다. 많든 적든 한줄기 뿌리고 나면 그 아름답던 꽃들이 떨어지면서 봄은 손 한번 흔들지 않고 소리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개나리와 벚꽃을 보며 출근하는데 핸드폰의 진동이 허벅지를 자극했다. 아침 일찍 전화가 오면 왠지 불안하다. 액정화면을 보니 본가라고 되어 있었다. 소름이 확 돋아 올랐다. 무슨 일일까. 통화버튼 누르는 순간 엄마의 목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컨버터를 달고 나서 아침에 다시 보려하니 화면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냥 그대로가 좋은데 괜한 돈들이여 요상한 것을 달았다고 투정을 부린다.

 

“이렇게 저렇게 눌러보세요.” 원격조정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가까운 거리 같으면 바로 달려가 버선 뒤집듯이 쉽게 해결할 수 있는데, 참으로 답답할 따름이다. 정부시책에 의해 내년부터는 디지털로 바뀌어 기존 아날로그 텔레비전은 볼 수 없다고 반복하여 강조 했지만 엄마는 이해를 하지 못하고 원망만 했다. 어찌한단 말인가. 어찌해야 하나.

 

전화를 끊고 디지털방송전환센터에 서비스요청을 했더니 단순 조작미스에 관해서는 서비스 할 수 없다고 한다. 홀로계신 엄마는 텔레비전 보는 것을 낙으로 살고 있는데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둠이 내리고 나면 썰렁한 집에서 볼 것이라고는 텔레비전 밖에 없는데 긴긴밤 무엇을 하고 보낼까. 곰곰이 생각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웃집에 부탁하려 했지만 다들 노인들만이 살고 있어 불가능했다.

 

다시 원격조정을 하기위해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핸드폰도 받지 않는다. 갑자기 가슴이 뛰면서 불안감이 밀려 왔다. 작년에 쓰러지고 나서 간신히 밥만 해먹고 아무것도 못하는 우리엄마, 혹시 잘못되지는 않았을까. 별이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전화국에 고장신고를 했다. 선로가 잘못되었다고 내일 방문을 한다고 한다. 잘 되었다 싶어 가는 김에 텔레비전도 손을 봐달라고 했다. 흔쾌히 승낙했다. 하지만 전화가 안 되어 걱정이 앞섰다. 잠시 머뭇거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엄마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왜 전화를 안 받았느냐고 짜증을 냈더니만 벨소리가 울리지 않았다고 한다.

 

오늘 KT에서 전화기도 고치고 텔레비전도 고쳤다. 정말 고마웠다. 컨버터 설치한 사람들이 전화기 코드를 빼놓고 그대로 가버려 소동이 벌어진 것이었다. “나쁜 사람들 같으니라고” 돈벌이에만 정신이 없어 끝마무리를 잘 못한 것이다. 항의 전화하려다 참았다. 시골노인들이 복잡한 리모컨을 익숙하게 사용하는 것은 무리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배우지 않으면 정말 살기 힘든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