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무기력증에 빠진 봄

말까시 2012. 3. 21. 17:48

 

 

“무기력증에 빠진 봄을 이겨내기 위해

보약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봄기운이 오려다 말고 살살 약을 올린다. 그늘진 곳에는 찬바람이 매섭게 불고 있다. 무심코 두루마리를 걸치지 않고 외출을 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삼월의 중순을 넘어 그믐으로 달려가는 즈음, 설악의 능선에는 폭설이 내리어 산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계절의 감각을 무색케 하는 변화무쌍한 날씨는 약한 이들의 호흡기에 감기바이러스가 침투하는 것을 방관하고 있다.

 

요즈음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낭떠러지에 매달려 버티다가 떨어지기도 하고 도둑놈이 들어와 물건을 훔쳐가도 다리는 꼼짝을 하지 않는다. 강물 위를 빗자루를 타고 윈드서핑을 하는 즐거운 꿈을 꾸기도 한다. 가장 무서운 꿈은 전쟁터에서 총알이 무수히 쏟아지는 벌판을 헤매다가 한방을 맞고 벌떡 일어나 멍하니 있다가 꿈이었구나 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곤 한다. 겨우내 움츠린 몸에 연속되는 폭음에 기가 다 빠져 나가지 않았을까. 봄을 맞이하기가 이렇게 고통스러워서야 어디 꽃구경이라도 갈 수가 있겠는가.

 

지난겨울 고향친구들하고 칡을 캐어 술을 담갔다. 거실 책장 맨 위에 올려놓아 식탁에서 고개만 돌리면 바로 볼 수 있다. 알코올이 침투하여 칡 속의 영양분을 맹렬히 뽑아내고 있다. 색깔 또한 진한 갈색톤 으로 양주의 색과 별반 다름이 없다. 하루하루 변해가는 색은 수없이 눈길을 끌어 모은다. 볼수록 탐스럽고 부드러운 이미지가 손을 다가가게 한다. 3개월은 익혀야 제 맛을 내는데 벌써 반통을 다 비워버렸다. 저녁마다 마신 칡술로 인하여 악몽을 꾸는지도 모르겠다.

 

정력에 좋다는 수많은 음식들이 넘쳐나는 요지경세상에서 무엇을 먹어야 기운을 차릴 수 있을까. 좋다고 하는 정보 또한 인터넷을 달군다. 건강보조식품이 만병통치약으로 둔갑하여 재래시장에서 무차별 판매되고 있다. TV홈쇼핑 역시 건강보조식품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건강을 부르짖으며 얄팍한 인간의 마음을 파고든다. 미모의 쇼호스트가 뿜어내는 언변에 빠져들다 보면 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놓기를 반복한다. “지금 주문이 폭주하고 있습니다. 주저하다보면 이렇게 좋은 조건에 푸짐한 상품을 놓칠 수 있습니다. 자동주문 전화로 연결하시면 00원이 할인됩니다. 지금 바로 전화 주십시오.” 정신없이 외쳐대는 두 명의 쇼호스트에 정신을 빼앗기다 보면 주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헛개나무 추출액과 산수유과립을 복용하고 있다. 홍삼엑기스는 먹다가 너무 오래되어 그대로 방치하고 얼마 전에 복용하기 편리한 홍삼 환을 아내가 사와서 식탁위에는 건강식품 상자들로 가득하다. 기관지에 좋다고 도라지 엑기스도 사왔지만 반 정도 먹다가 역겨워 멈추었다. 아내는 아침마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 챙겨먹으란다. 삐거덕 소리 안 나게 잘 굴러가게 하기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 같다. 부지런히 먹고 마시고 했지만 왠지 허깨비만 보여 큰일이다.

 

소리 없이 다가오는 무기력증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건강식품도 무시해선 안 된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 유기농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섭취해야 하지만 도시의 생활에서는 실천하기 어렵다. 세상에는 믿을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내가 직접 채취하고 만들지 않으면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수가 없다. 주말에 가까운 산이나 들에 나가 자연이 주는 귀한 선물을 담아오는 수밖에 없다. 기력을 되찾고자 고향의 뜰에 자라고 있는 야생초를 캐러 이번 주말 고향에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