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에 드리워진 봄기운
◇ 관악산의 드리워진 봄기운
온기는 가슴을 활짝 펴게 했다. 살살 부는 바람은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냉기는 없었다.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두둥실 떠있다. 하늘높이 올라있는 구름은 비를 머금은 것 같지는 않았다. 푸른색 버스는 울긋불긋 산사람들을 마구 토해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떠났지만 시계탑 광장은 계속하여 산사람들로 가득했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산길은 길었다. 그 길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갔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산을 찾은 사람들의 얼굴은 미소로 가득했다. 갑갑한 도시를 뒤로 하고 오르는 길은 하염없이 즐거웠다. 모든 것 다 잊은 채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오르는 길은 벅찼지만 기분만은 최고였다.
앙상한 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이마의 땀방울을 앗아갔다. 바싹 말라비틀어진 낙엽은 산사람들의 발길질에 가루가 되어 날리었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산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산님들을 맞이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산은 표정이 없이 차가웠다. 약간은 수줍듯 바람을 일으켜 잔가지를 흔들게 했다. 하늘높이 솟아 있는 상수리나무 꼭대기에는 겨우살이 형상을 한 가치집이 시선을 끌었다. 둥지에 가치는 없었다.
제수용품과 음식을 꺼내 정성껏 차렸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거행된 2012시산제는 많은 친구들이 참석하여 저마다 무사무탈을 기원했다. 큰 바위 밑에 줄을 서고 있는 벗님들의 얼굴에는 약간 상기된 듯 근엄했다. 음복을 함으로써 시산제는 끝났다. 그렇게 많고 많던 구름은 소리 없이 사라지고 둥근 해만이 우리들의 보금자리를 비추고 있었다. 맑고 쾌청한 날 좋은 음식과 정력에 좋다는 각종 술을 마시며 오찬을 즐겼다.
낙엽으로 만들어진 우리들의 공간은 넘어져도 깨질 염려가 없었다. 어린동심으로 돌아가 풍선 터트리기 게임을 하며 즐거움을 만끽했다. 풍선에 미끄러져 넘어져도 아픔이 없었다. 낙엽위로 뒹굴어 포개져도 부끄러움이 없었다. 짓궂은 장난으로 함박같이 큰 여인의 궁둥이가 가슴을 내리쳐도 화를 내기는커녕 즐거워했다. 웃음보따리는 세상만사 골치 아픈 일로 굳어 있던 안면 근육을 푸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깔깔거리고 즐거워하는 사이 시간은 마구 달려가고 있었다. 정수리위에서 내리쬐던 해님도 서산마루를 향해 기울어져 있었다. 볼일이 급한 친구들은 하나둘씩 숲속으로 사라졌다. 뜨거운 물줄기는 계곡을 타고 내려오다 이내 스며들어 자취를 감추었다. 머지않아 움트는 새싹의 밑거름이 되어 새 생명의 탄생에 일조를 할 것이다.
아침에 부풀어 올랐던 배낭은 할머니 젖가슴처럼 홀쭉했다. 하산 길에 마주친 산님들은 지쳐 보였다. 오르면서 제잘 거렸던 그 소리보다는 못했지만 표정만큼은 여전히 밝았다. 하산 길 자꾸만 뒤를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아쉬움이란 단어가 연상되어 진다.
산은 바보 같은 사람을 천재로 만들고 축 처진 어깨를 치켜 올려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무표정으로 맞았다가 돌려보내는 그 마음 또한 변함없는 산이야 말로 멀리 할 수 없는 소중한 삶의 한 터전이다. 아침에 만나 저녁 늦게까지 같이한 한 시간이 일순간에 지나간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분명 즐거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산에서 얻은 소중 한 것들을 내 삶에 보태어 버무린다면 지금보다 더 낳은 삶을 영위 하지 않을까. 산은 그대로 거기에 있다. 그래서 또 그 곳으로 갈 것이다. “조같이 열심히 살자. 조도 아닌 사람도 많다.”(여인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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