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은 산에서의 하루(사패산)
◈ 어느 작은 산에서의 하루(2011. 5. 14.)
푸르다. 산도들도 온통 녹색의 물결로 뒤덮여 넘실거린다. 가지에 돋아난 새싹은 벌써 잎이 되어 흔들린다. 겨우내 뻥 뚫렸던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계절은 일순간 저만치 달아났던 것이다. 가지와 가지사이에 드리워진 진녹색은 대지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선글라스도 벗었다. 마스크도 필요 없게 되었다. 녹음이 우거진 골마다 사람들로 가득했다. 새소리, 물소리, 사람소리가 어우러진 숲속은 해지는 순간까지 불협화음 하나 없이 매끄러웠다.
꽃이 진 자리에는 동그랗게 열매가 맺었다. 작은 열매는 본연의 색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표면에 솜털을 만들어 냈다. 잎사이로 들어온 해살은 뾰족한 솜털의 끝가지 윤각을 뚜렷하게 했다. 골 깊은 곳에 머물러 있는 바위아래 이끼는 물을 듬뿍 머금은 채 빛났다. 떨어지는 물소리에 놀란 강아지풀은 파르르 떨었다. 산란기가 다가오는지 딱따구리의 집짓는 소리는 나무와 나무사이를 뚫고 저 멀리 퍼져 나갔다.
능선의 바람은 세찼다. 나무는 작았다. 척박한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나무는 바람에 몹시 흔들렸다. 물먹음이 부족하고 온기가 미치지 못한 정상의 잎들은 손톱처럼 작았다. 골짜기는 푸른색, 정상은 연녹색, 고도에 따라 달리 보이는 색은 춤을 추웠다. 달려오는 색들은 탁한 눈을 시원하게 했다. 큰 나무아래 작은 식물들은 이제 겨우 작은 손을 내밀고자 안간힘을 쏟고 있었다. 해충이 다녀간 잎들은 구멍이 뻥 뚫려 애처로웠다.
초파일이 지난 산사는 조용했다. 꽃등도 찢어진 채 널브러져 있었다. 법당에도 방석만이 덜렁 놓인 채 불자들은 없었다. 불상 앞에 놓인 촛불은 부드럽게 오르내렸다. 타고 들어가는 향불은 진한 향을 내보내 누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석굴 속에 차려진 불당은 싸늘했다. 호기심에 들여다 본 안에는 좁았다. 편안하게 앉아 있는 불상은 작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같은 모양의 작은 불상이 좌우로 줄을 이루고 있었다. 인간의 모습도 저러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강물에 돌다리가 있었다. 그 사이로 물이 쏜살 같이 빠져 나갔다. 사람들은 무서움이 엄습했는지 그 위로 빠르게 건너갔다. 생태하천 조성공사를 완료한 곳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덩달아 뛰노는 아이들과 산책을 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좀처럼 도시에서 보기 드문 풍경을 만들어 냈다. 강물은 비릿한 냄새와 악취를 풍겼다. 공들여 생태하천으로 조성했지만 수질은 요원한 것 같다. 수생식물이 자라고 물고기 노니는 맑고 깨끗한 생태하천이 되려면 세월이 더 흘러야 할 것 같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자연은 참으로 위대한 것 같다. 가끔 폭풍우를 동반하며 난동을 부리지만 철따라 변화하는 모습은 거짓이 없다. 신록의 계절 오월도 중순을 너머 마구 달리고 있다. 숲속이 주는 선물을 다 갖고 싶은 욕망이 넘쳐나지만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남 몰래 달려가 훔쳐오고 싶은 욕심이 용솟음치는 포근한 계절, 가지마라 잡고 늘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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