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내가 품어버린 낙산앞바다

말까시 2011. 5. 4. 14:26

 

  

“내가 품어버린 낙산앞바다”

                                                                                                             2009. 1. 3.

 

새해 첫날 전국곳곳에서 해돋이 행사가 다양하게 펼쳐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소망을 빌고 또 빌었다. 해돋이 행사장마다 가족들과 연인 또는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이번에는 꼭 명소에 찾아가 해돋이 행사에 참여 할 것이라 했지만 단 1%가 부족하여 올해도 텔레비전이 전하는 영상 앞에서 소원을 빌어야 했다. 내년에는 꼭 실천하리다.

 

마침, 연초에 고등학교 동창들의 설악산 산행계획이 있어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동참하기로 했다. 연말 그렇게 추웠던 동장군도 새해 떠오르는 태양의 열기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출발하는 날 아침 바람도 잔잔했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깨끗했다. 달구지에 몸을 실어 양평을 거쳐 설악산을 향해 달렸다. 서울을 빠져나가는데 조금 밀렸을 뿐 정상 속도를 내는 데는 걸림돌이 없었다.

 

차안의 공기는 탁했다. 히터를 켜지 않아도 열기는 대단했다. 환기를 하고자 잠시 열어버린 빈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공기는 상쾌했다. 좁은 공간에 많은 친구들이 옹기종기 밀착하다보니 불편하기는 했지만 기분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자주 보지 못하여 약간은 서먹했지만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예전으로 다시 돌아갔다. 오고가는 대화 속에 싹트기 시작한 웃음꽃은 차안을 가득 차고 남아 천장을 뚫고 하늘높이 솟았다.

 

달구지는 양평을 지나 홍천언덕을 넘었다. 급한 용무로 잠시 휴게소에 들렸다. 무엇인가 요기하려 했지만 사람도 많고 추웠다. 바리바리 싸가지고 온 음식 먹을 곳을 찾아 헤매야 했다. 여의치 않았다. 다시 달구지는 달리기 시작했다. 베테랑기사는 얼마 가지 않아 양지 바른 언덕이 있는 곳에 달구지를 멈추었다. 콘크리트 구조물을 식탁삼아 새벽에 삶아 온 돼지고기를 김장김치와 함께 아주 맛있게 먹었다. 곁들여 마신 막걸리는 술이 아니라 청량제였다.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한 친구들의 입에서는 말 폭탄이 터지기 시작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계속하여 설악까지 이어졌다.

 

설악산은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얼마 전에 내린 눈은 녹지 않고 그대로 거기에 있었다.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달구지는 느림보였다. 설악산 도로 양옆에는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밀리기 시작하여 권금성 케이블카매표소에 도착 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흘러서였다. 산과 들 주차장 모든 곳이 하얀 눈으로 뒤 덮여 있었다. 산 정상에 오르면 설경이 얼마나 멋질까 상상만 해도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케이블카 매표소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예감이 별로 좋지 않았다. 결국 설악산 설경을 구경하는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차가운 공기한번 마시고 돌아 나와야 했다. 관광객이 너무 많아 케이블카를 탈수가 없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와서 정상에 가보지 못하고 돌아가야 하는 현실에 다들 실망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대포항’에 여장을 풀고 시원한 바다를 구경했다. 시간이 꽤나 흘러 배꼽시계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포구를 따라 길게 늘어져 있는 가게마다 팔딱거리는 활어들로 넘쳐 났다. 해산물의 종류가 너무 많아 무엇을 골라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초입부터 끝까지 가격을 조사했지만 대동소이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인상이 아주 좋아 보이는 아줌마 앞에 멈추어 섰다. 인상만큼이나 서비스도 만점이었다. 덤으로 한주먹 집어준 개불, 해삼, 멍게는 바다냄새가 진하게 나면서 입안에 침을 고이게 했다.

 

어시장 인근에는 식당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인상 좋은 아줌마의 안내로 근처에 있는 식당을 찾아 가니 사람들로 가득했다. 싱싱한 회와 한잔 또 한잔을 마시니 케이블카를 타지 못해 딱딱하게 굳어 있던 얼굴들이 풀리기 시작했다. 술기운이 퍼지기 시작한 안면근육에서는 온천수가 흐르는 듯 모락모락 김이 솟아올랐다. 알코올에 취하여 붉게 물든 얼굴은 흔들리는 한 떨기 꽃이었다.

 

거하게 취기가 올랐을 때 천년의 고찰 낙산사로 향했다. 그곳 역시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몇 년 전에 산불로 다 타버리고 새로이 중건한 건물들은 고전미는 없었지만 그 웅장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낙산사를 끼고 해안가를 한 바퀴를 돌고나니 가슴이 뻥 뚫렸다. 바위를 때리는 파도는 물기둥을 높이 올렸다. 하얗게 부서는 물보라는 솜사탕처럼 포근했다. 쏜살 같이 달려가 한손에 담아 입에 넣고 싶었다. 해안가 절벽에 솟아난 기암괴석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 뽐냈다. 덩달아 불어오는 바람은 차가움보다는 신선함이 더했다.

 

다시 발걸음은 낙산해수욕장 모래사장 앞에서 멈추었다. 겨울바다의 차가움에서 느껴지는 시원함과 탁 트인 바다를 보니 바로 뛰어 들고 싶은 충동이 앞섰다. 파도치는 끝선까지 달려갔다. 하얗게 물보라를 일으키며 다가오는 파도는 유혹의 손길을 내밀었다. 장난기가 발동한 친구들은 밀고 당기어 엎어지고 넘어지고 하다 보니 모래를 한바구니 뒤집어썼다. 싫지 않았다.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한참을 모래사장에서 즐거움을 만끽했다.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속으로 퐁당 하고픈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얼음장 같이 차가운 바닷물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용기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낙산해수욕장 모래사장에 어둠이 내리자 일순간 바다는 검게 변했다. 해안가 건물에서 일제히 쏟아지는 조명은 모래사장을 환하게 비추고도 남아 바다를 적시었다. 군데군데 모여 있는 연인들은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더 밀착하여 친밀감을 과시했다. 바닷바람이 몹시 차가웠지만 좀처럼 사람들은 떠날 줄을 몰랐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파도치는 소리는 저 멀리 한계령까지 날아가려는 듯 크게 철석 거렸다.

 

고도 높은 한계령을 넘어가는 달구지는 힘에 부친 듯 굉음을 내며 기어갔다. 달구지도 힘들고 사람도 지치고 허기졌다. 길옆에 있는 편의점에서 달구지는 멈추었다. 주차장 모퉁이에서 직접 끓여먹은 라면은 그 어떤 음식보다도 진미였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밤,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빛 삼아 라면과 함께한 소주와의 궁합은 환상이었다. 기름을 가득채운 달구지는 쏜살같이 달려 서울에 도착했다.

 

비록 설악산의 정상에 올라 아름다운 설경을 보지는 못했지만 오랜만에 동해바다를 품고 싱싱한 횟감을 맛 볼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친구들과 장시간 같이 있어 행복했고 오고 가면서 간간이 터진 폭소는 멀어질 번한 우정을 다시 한 번 동여매는 계기가 되었다. 헤어지면서 다음기회에 충분한 사전 준비로 설악산을 정복하여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자는 제의에 반대하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